<엘레지>는 주인공 대학교수(데이빗)의 방송 대담과 함께 톨스토이의 이 인상적인 경구로 시작된다. tv대담의 주제는 다름아닌 성적 자유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기 첫수업에서 데이빗은 또 이런 어려운 질문을 해댄다.
우리가 전쟁과 평화를 읽음으로서 다른 책이 될까
노년의 교수 앞에는 강의 시작과 함께 그림 속에서 튀어 나온 듯한 아름다운 여학생이 등장한다. 그리고 데이빗의 '나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유독 약하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이쯤 되면 이 영화가 풀어낼 멜로는 바닥을 드러낸듯 했다. 정말 그렇다. 모든 음악과 미술을 섭렵하고 좋은 문화를 선별할 줄 아는 이 똑똑한 늙은이에게도 늙어감은 남과 다를 바 없지만 그의 노년을 놀랍게 만드는 새 살같은 사랑이 찾아 왔다고 해도, 우리는 놀랄게 없다. 영화와 문학이 오랜 세월 써먹은 낡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멜로에 달라붙어 뜨겁고 끈적거리는 방식을 탈피한 <엘레지>는 데이빗과 그의 오래된 벗 조지 오언의 수다를 통해 거꾸로 그들의 사랑을 쿨-하게 다룬다. 퓰리쳐 상을 수상한 시인 조지는 '철이 드는 것을 걱정하라'는 충고를 해주는, 데이빗보다 한 술 더뜨는 상큼한 노인네다. 둘의 커피, 라켓볼 수다로 재현되는 서른살 차이의 이 연애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장치인 샘이다.
아니, 장치를 넘어서서 <엘레지>는 남성의 노년을 지적인 멜로로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이 영화가 충분히 지적일 수 있는 이유는 데이빗이 똑똑한 남자라서가 아니라 데이빗에게 그녀-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는 예술작품에 비견되면서 사랑-섹스-소유-예술의 그럴듯한 방정식을 구상한다는 점이다.
조지 오언은"그녀를 본적이 있나?""아름다움은 볼 수 없다."라고 시인다운 충고를 하고, 데이빗은 '절대 영원히 그녀를 갖지 못할 거라고' 독백하면서 마야베스티다의 초상이 그녀를 닮았다고 경배한다. 고전도 시간이 흐르고 매번 다른 사람을 만남으로서 아름다움이 재생 되듯이, 아니면 예술의 소유권은 그것을 가진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듯이 예술과 인간의 관계에 그녀를 대입하는 이상한 방식을 만나게된다.

콘수엘라는 하나의 작품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페넬로페 크루즈의 얼굴과 가슴과 곡선을 훑는 카메라와 축축한 피아노 배경음은 그녀가 예술작품이 맞다고 웅변하는듯 했고, 그녀의 순수하고 당차고 지적인 행동들은 그녀를 세상 밖으로 옮겨 놓는 듯했다. 지금 당장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이 남자가 자신과의 미래를 꿈꾸기나 하는지가 더 중요한 성숙한 젊은 여자가 오히려 노년을 성장하게 만든다.
그는 그녀를 '모순의 고리'라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도 멈추지 않는 남성의 소유욕이 만들어낸 변명처럼 들린다. 적어도 영화 안에서 그녀의 행동은 그에 비해 지극히 정상이다.
요새 읽고 있는 책이 공교롭게도 <다시 태어나는 중년>이다. 여성의 중년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와 충고를 담고 있는 이 책과 더불어 '다시 태어나는 중년 남성'을 다룬 <엘레지>는 즐거웠다. 우리의 아버지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겠지만, 그들의 욕망이 이만큼 살아있음을 확인한다면 우리가 너무 불편해질까?
"섹스없이 누구에게 반해본 적 있습니까."는 데이빗이 콘수엘라와 섹스하기 직전에 독백한 대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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