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괴짜 예술가들까지 합세해 5각관계로 사랑탑을 쌓은 노장의 감독은 참 사랑얘길 좋아한다 싶다. 그의 지칠줄 모르는 탐색은 노장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열정적이고, 상큼하고, 호기심어리다.

이 영화에서 나레이션이 빠진다면 우디알렌의 표딱지가 떨어질 법도 하다.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부연하지 않아도 영화를 따라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굳이 거추장스런 나레이션을 고집한 이유를 찾아 볼 작정이다.
영화는 미국인 여성 둘이 바르셀로나로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시작된다. 남자 취향이 다르다는 걸 제외하곤 둘다 매력적이고 아름다우며 기호가 비슷하다.
여행은 '밖'으로 향하는 행위 이지만 여행'안'을 들여다보면 집'안'처럼 어떤 규칙들이 있다. 낯선 사람, 구경 거리, 새로운 식당과 음악,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일탈. 제아무리 여행이래도 어느 정도의 예상과 기대치는 있다.
비키와 크리스티나 역시 순진함을 벗은 나이로, 집 밖에서 여행의 안을 즐길 줄 아는 영리함을 가졌다. 그러나 예상과 기대를 넘어서는, '여행의 안'을 침입하는 사건에 까지 긴밀히 대응할 수는 없었다. 여름휴가로 인해 결혼을 앞둔 단정하고 성공한 남자와 파경을 맞을 직전이라면, 여행의 일탈은 궤도의 이탈로 바뀌어야 하겠다.
이 영화는 이렇게 일탈과 이탈 사이에 있다. 그녀들이 만난 사람이 여행지에서 만날 법한 친절하고 마음에 맞는 뉴페이스 정도가 아니라, 예술과 사랑에 미친 예술가 이기 때문이다. 부처를 보고도 부처인 줄 모르면 그만인 것을, 둘 중 호기심 많고 자유분방한 크리스티나가 이 예술가를 '발견'하고 만다. 그래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일탈에 머물지 이탈이 될지는 영화를 보고 각자 확인하는 편이 낳겠다.
예술가 부부의 삶은 별로 새로울 게 못 된다. 새로운 건 이들 사이에 샌드위치된 크리스티나다. 재능 많고 자유로운 화가 부부와 다방면에 예술적 호기심으로 가득찬, 열정적인 그녀(스칼렛 요한슨)가 만났을 때 일어날 법한 일은? 또 능력있고 안정적인 남자를 옆에 둔, 꼿꼿하기만 했던 여자가 스치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대단한 그녀들 앞에서 예술가의 성역은 모래탑처럼 흘러내린다. 비키의 삶이 무미 건조할 가능성이 다분하더라도, 크리스티나의 의미없는 방황이 이어질 지라도, 그녀들의 평범한 선택과 사랑이 예술가들보다 비루하다고 과연 누가 말 할 수 있을까.
우디알렌의 인간에 대한 이런 정표는 유쾌하고 쿨하면서 사실은 매우 공평하기도 하다. 대사나 행동에 앞서 나레이션으로 선수를 치면서 관객이 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그림만 보는 것과 설명을 들으면서 보는 것이 매우 달라질 수 있음을 상기하면 된다. 그가 창조한 그들이 모두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관객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레이션으로 인물들은 더 섬세하게 세공되고 관객은 선정적인 혼란 속에서도 쉽게 평온을 찾는다. 이 점이 바로 우디 알렌식의 마감재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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