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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 청춘
잘한다, 청춘 2011/12/30

"나? 이제 많이 길들여였지." 대학에 갓 입학해서 만났던 친구를 서른 둘에 다시 만났을 때 제가 했던 말이었습니다. 무엇에 길들여 졌냐고요? 20대의 분노, 욕망, 신념과 맞서던 바깥 세상으로부터 길들여진겁니다. 어쩌면 그때..

서점 명가 로드뷰❹ 대구 물레책방

'간디의 물레'처럼 이야기가 줄줄 감겨 나올 것만 같은 대구 수성경찰서 옆으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서 50미터쯤 올라갔을까. 작은 네모 간판이 보인다. 연둣빛 바탕에 쓰인 글씨 ‘물레책방’(이하 ‘물레’). 재밌는 이야기들이..

디지털 in, 디지털人-'나모이북에디터' 박광섭 대리

나모 인터랙티브(이하 ‘나모’)가 지난 달 ‘나모이북에디터’(Namo e-book Editor, 이하 ‘이북에디터’)를 내놓았다. 이북 에디터는 1인 전자 출판 시대를 맞아 기존의 출판용 데이터나 워드 프로세서로 작업한 파일..

서점 명가 로드뷰❸ 대전 계룡문고

이야기가 넘치고 빛그림이 흐르는 일흔 다섯 번째 ‘서점 나들이’를 가다 막 어린티를 벗은 여자 아이 셋이 ‘왜요 아저씨’를 향해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넨다. 재잘재잘 말을 붙여오는 아이들에게 이 대표는 이내 반갑게 고개를 끄..

3월 eBook new Book
3월 eBook new Book 2011/03/09

<멀티북> 아기돼지 삼형제 이지넷 만듦 이지넷에서 개발한 Toddler eBook 시리즈로 전문 성우가 읽어주는 앱북이다. 동화를 읽어 주는 기능 뿐 아니라 부모님이나 아이가 직접 동화를 녹음 하여 들을 수 있으며, 동화 캐릭..

2월 eBook new Book
2월 eBook new Book 2011/03/09

<이북> 발리홀릭, 신들의 섬에서 노닐다 임진숙 지음 | eStory 펴냄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저자가 발리의 매력을 잊지 못해 다시 ‘신들의 섬’을 찾는다. 발리의 예술촌 우붓에서 민박하며 현지인들과 섞여 발리의 속살을 체험..

왜 전자책을 좋아하지 않을까?-Q&A로 푸는 ‘전자책’ ②

서울 서대문 사회과학서점 ‘레드북스’에서 진행한 《홍기빈, 자본주의를 말하다》 미니 강연회 참석자들의 물음표 선택 ⓠ 왜 전자책을 좋아하지 않을까? 알기 쉬운 ‘전자책 사용 설명서’를 종합하고자 마련한 ‘독자참여형 전자책 Q&..

지면으로 만나는 ‘전자책 세미나’②

한국전자출판협회 주최 ‘2011 글로벌 협업 프로젝트’ 제안 설명회 출판사와 개발사를 이어주는 ‘애플리케이션’ 다리 한국전자출판협회(회장 최태경)가 중소출판사와 중소개발업체의 협업을 돕고자 제안 설명회를 마련했다. 지난 1월..

책 자루2010/07/14 07:28
3차원이 기적인가요? 청소부가 쓰레기통에서 주운 로또표가 1등에 당첨되거나 무농약으로 생산한 사과의 수확량이 관행농법 과수보다 월등한 것, 청산가리를 털어넣고 고층빌딩에서 떨어지고도 별탈없이 살아난 것. 기적이라면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을까요.

평면으로 보이던 세상이 입체감을 띄기 시작한 게 과연 기적 축에나 끼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기적은 훨씬 자극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일테면 사시가 시공간을 뛰어넘는 4차원을 경험했다든지, 목회자의 연단에서 그를 추종하던 눈 먼 어린양이 영성의 손길로 눈을 뜬다거나요.

사시 교정술로 눈은 정렬됐지만 입체시를 경험할 수 없었던 수전 배리 박사가 새롭게 경험한 3차원의 세상 <3차원의 기적>.
 
이 책의 '기적'은 역설입니다. 우리에게 3차원은 평범한 일상입니다. 제아무리 눈을 감아도, 사물과 자연의 질감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려해도 그녀의 결핍은 우리에겐 저절로 주어진 것이었기에, '체감'은 불가능했습니다. 거꾸로 장님 문고리 잡듯이 문장을 더듬거린 것은 저였습니다.


운전대가 자체의 공간 속에 둥실 떠 있었고, 운전대와 계기판 사이에는 손에 잡히는 부피의 빈 공간이 채워져 있었다. ...그날 내내 간헐적으로 또 순간적으로 전혀 예기치 않게 입체시를 보았고, 이는 절대 경이와 기쁨의 순간들을 가져다주었다. 가장 평범한 사물들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커다란 싱크대의 수도꼭지가 나를 향해 뻗어 나왔으며, 수도꼭지의 곡선은 그 어느 것보다도 사랑스러웠다. ...나는 나뭇가지들 사이 공간의 부피를 단지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었고, 그 유혹적인 공간의 주머니들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도 좋아 그 주머니들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3차원의 기적> 154쪽




운전대와 계기판 사이의 부피, 수도꼭지의 사랑스런 곡선, 나뭇가지 사이의 공간? 실증나는 줄도 모르고 며칠이고 넋을 잃고 보았다는 그녀의 재조립된 세상이 제 눈에도 보였으면 싶었습니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녀는 경험과 추론 만으로 사물과 자연이 평면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겹쳐진 물건은 앞이 뒤를 가리고 있었으므로 공간을 추론했고, 가까운 건 크게 먼 곳은 작게 보이는 기초적인 단서들로 위치들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마흔이 넘어까지 쭉 보아왔다던 '평면의 세상'이란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에 쉬이 공감 수 있겠다 싶었죠. 



<사흘만 볼 수 있다면>/헬렌 켈러/산해
<3차원의 기적>/수전 배리/초록물고기


제 예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어서 읽은 헬렌 켈러의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실린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살에 눈과 귀를 멀고도 수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대학을 졸업한 과정들은 점자책과 헌신적인 설리번 선생님, 헬렌켈러의 지적 호기심으로 설명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각적 경험을 뛰어넘는 빽빽한 묘사들은 대체 어디서 태어난 걸까요?   


눈송이가 닿은 크고 작은 나무들마다 듬성듬성 주름진 잎사귀만 몇 남긴 채 발가벗고 선 걸 발견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새들도 날아가버린 빈 둥지, 벌거벗은 나무는 온통 흰 분으로 덮여 있었다. ..차가운 손길이 지나간 대지마다 감각을잃고 나무의 원기마저 뿌리까지 마비되어 어둠에 움츠러든 몸뚱이는 잠에 빠져 있었다. 모든 생명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시간 또 한 시간 저 높은 허공 어디에선가 눈은 점점 쌓여 높낮이를 알 수 없는 눈 세상을 만들었다. 밤새 내린 눈 때문에 아침이 되어도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통 분간할 수 없었다. 길이란 길은 죄다 눈 속에 파묻히고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도 보이지 않는, 다만 나무에서 떨어진 눈만이 제 키를 계속 키울 뿐이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120~121쪽




그녀가 자그마한 진동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내용들은 자주 나옵니다. 모여든 사냥꾼들이 일제히 자리를 털거나 체스판의 말을 옮기거나 할 때 전해지는 울림은 그녀가 보지 않고 감을 잡는 법을 귓띔해 줍니다. 하지만 소리도 없이 내려 쌓이는 눈에 대한 감각은 어디서 불러온 것일까요. 

스물 셋에 쓴 이 스물세 꼭지의 자서전 중 당당히 한 꼭지를 차지하고 묘사된 뉴잉글랜드 마을에서 보낸 겨울. 설국, 그 신비한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그녀에게 각인되었는지가 저는 못내 궁금했습니다. 누군가는 '마음으로 보는 법'을 말할 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손'이라는 눈을 대신한 감각을 앞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느때라면 두루뭉술 넘어가고 말았을 텐데 '체감할 수 없는 불편함'을 일깨운이 <3차원의 기적>이 다른 해석을 요구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헬렌켈러의 자서전에 앞서 실린 '내가 만일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22쪽
 

이어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깨닫는 촉감을 이용한 과정들이 기술됩니다. 심지어 목청껏 노래하는 한 마리 새의 지저귑으로 작은 나무가 행복해 하며 떠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건 '보는 것'으로 간과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그녀에 비해 누가보아도 월등한 능력을 자랑하는 나의 시력이 실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점자책을 읽는 법을 배우면, 뇌 안에서 점자를 읽는 검지에서 촉각 입력을 받는 뉴런의 개수가 증가한다.'(34쪽)는 <3차원의 기적>이 한 말이었습니다. 또 "뇌는 시각으로 만진다"는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말을 인용(202쪽)하기도 했습니다.

헬렌켈러가 발휘한 묘사적 능력에는 언어적 재능이 십분 발휘되었겠지만, 그 이전에 감상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 그녀의 촉각 입력은 보는 것으로 만족할만한 우리의 패턴과는 다를 수 있음을 짐작해봅니다. 또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달된 촉각은 '시각'을 대신해, 뇌로 설국의 풍경을 만지는데 충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눈 뿐만아니라 그녀의 손(피부)은 우리의 손과 다를것입니다. 눈만 감는다고 해서 그녀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순전히 착각이었던 거죠.   

또한 다수의 문학작품들을 섭렵하고 감동받아왔던 그녀의 감성이 '보이는 듯한' 비유를 건져올렸을 것입니다. 추상적인 문자 앞에서 만큼은 그녀와 우리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눈을 '편리한 도구'로만 인식했을 때, 세상은 무척이나 초라해 질 수도 있음을 확인합니다. 

신경과학자로서 평면시에서 입체시로의 과정을 치밀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수전 배리박사가 경험한 3차원 역시도, 복잡한 두 눈의 융합과 입체적 생동감을 인식할지 못할 때, 우리가 놓치는 것들을 상상하게 합니다. 보지 못하면서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입체시를 얻으면서 '보는 재미'를 느끼는 두 여자에게서, 저는 제가 가진 장애를 떠올립니다. 두 개의 눈으로 합쳐지는 하나의 세상과 각각의 깊이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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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