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으로 보이던 세상이 입체감을 띄기 시작한 게 과연 기적 축에나 끼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기적은 훨씬 자극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일테면 사시가 시공간을 뛰어넘는 4차원을 경험했다든지, 목회자의 연단에서 그를 추종하던 눈 먼 어린양이 영성의 손길로 눈을 뜬다거나요.
사시 교정술로 눈은 정렬됐지만 입체시를 경험할 수 없었던 수전 배리 박사가 새롭게 경험한 3차원의 세상 <3차원의 기적>.
이 책의 '기적'은 역설입니다. 우리에게 3차원은 평범한 일상입니다. 제아무리 눈을 감아도, 사물과 자연의 질감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려해도 그녀의 결핍은 우리에겐 저절로 주어진 것이었기에, '체감'은 불가능했습니다. 거꾸로 장님 문고리 잡듯이 문장을 더듬거린 것은 저였습니다.
운전대와 계기판 사이의 부피, 수도꼭지의 사랑스런 곡선, 나뭇가지 사이의 공간? 실증나는 줄도 모르고 며칠이고 넋을 잃고 보았다는 그녀의 재조립된 세상이 제 눈에도 보였으면 싶었습니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녀는 경험과 추론 만으로 사물과 자연이 평면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겹쳐진 물건은 앞이 뒤를 가리고 있었으므로 공간을 추론했고, 가까운 건 크게 먼 곳은 작게 보이는 기초적인 단서들로 위치들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마흔이 넘어까지 쭉 보아왔다던 '평면의 세상'이란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에 쉬이 공감 수 있겠다 싶었죠.
<사흘만 볼 수 있다면>/헬렌 켈러/산해
<3차원의 기적>/수전 배리/초록물고기
제 예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어서 읽은 헬렌 켈러의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실린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살에 눈과 귀를 멀고도 수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대학을 졸업한 과정들은 점자책과 헌신적인 설리번 선생님, 헬렌켈러의 지적 호기심으로 설명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각적 경험을 뛰어넘는 빽빽한 묘사들은 대체 어디서 태어난 걸까요?
그녀가 자그마한 진동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내용들은 자주 나옵니다. 모여든 사냥꾼들이 일제히 자리를 털거나 체스판의 말을 옮기거나 할 때 전해지는 울림은 그녀가 보지 않고 감을 잡는 법을 귓띔해 줍니다. 하지만 소리도 없이 내려 쌓이는 눈에 대한 감각은 어디서 불러온 것일까요.
스물 셋에 쓴 이 스물세 꼭지의 자서전 중 당당히 한 꼭지를 차지하고 묘사된 뉴잉글랜드 마을에서 보낸 겨울. 설국, 그 신비한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그녀에게 각인되었는지가 저는 못내 궁금했습니다. 누군가는 '마음으로 보는 법'을 말할 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손'이라는 눈을 대신한 감각을 앞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느때라면 두루뭉술 넘어가고 말았을 텐데 '체감할 수 없는 불편함'을 일깨운이 <3차원의 기적>이 다른 해석을 요구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헬렌켈러의 자서전에 앞서 실린 '내가 만일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어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깨닫는 촉감을 이용한 과정들이 기술됩니다. 심지어 목청껏 노래하는 한 마리 새의 지저귑으로 작은 나무가 행복해 하며 떠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건 '보는 것'으로 간과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그녀에 비해 누가보아도 월등한 능력을 자랑하는 나의 시력이 실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점자책을 읽는 법을 배우면, 뇌 안에서 점자를 읽는 검지에서 촉각 입력을 받는 뉴런의 개수가 증가한다.'(34쪽)는 <3차원의 기적>이 한 말이었습니다. 또 "뇌는 시각으로 만진다"는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말을 인용(202쪽)하기도 했습니다.
헬렌켈러가 발휘한 묘사적 능력에는 언어적 재능이 십분 발휘되었겠지만, 그 이전에 감상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 그녀의 촉각 입력은 보는 것으로 만족할만한 우리의 패턴과는 다를 수 있음을 짐작해봅니다. 또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달된 촉각은 '시각'을 대신해, 뇌로 설국의 풍경을 만지는데 충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눈 뿐만아니라 그녀의 손(피부)은 우리의 손과 다를것입니다. 눈만 감는다고 해서 그녀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순전히 착각이었던 거죠.
또한 다수의 문학작품들을 섭렵하고 감동받아왔던 그녀의 감성이 '보이는 듯한' 비유를 건져올렸을 것입니다. 추상적인 문자 앞에서 만큼은 그녀와 우리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눈을 '편리한 도구'로만 인식했을 때, 세상은 무척이나 초라해 질 수도 있음을 확인합니다.
신경과학자로서 평면시에서 입체시로의 과정을 치밀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수전 배리박사가 경험한 3차원 역시도, 복잡한 두 눈의 융합과 입체적 생동감을 인식할지 못할 때, 우리가 놓치는 것들을 상상하게 합니다. 보지 못하면서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입체시를 얻으면서 '보는 재미'를 느끼는 두 여자에게서, 저는 제가 가진 장애를 떠올립니다. 두 개의 눈으로 합쳐지는 하나의 세상과 각각의 깊이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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