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의 물레'처럼 이야기가 줄줄
대구 수성경찰서 옆으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서 50미터쯤 올라갔을까. 작은 네모 간판이 보인다. 연둣빛 바탕에 쓰인 글씨 ‘물레책방’(이하 ‘물레’). 재밌는 이야기들이 줄줄 감겨 나올 것만 같은 이름이다.
지하로 향하는 좁은 통로가 환하다. 어릴 때 한 번쯤 뒤적거렸을 법한 오래된 아동전집들이 층계참에 줄지어 서 있고, 디귿자로 돌아 나온 계단 끝에 널찍한 정방형 책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레 간판의 연둣빛이 책방 안에도 가득 물들어 있다. 서로 모양이 다른 나무 책장들이 벽을 둘러 깊숙이 책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물레책방은 헌책방이다.’ 물레의 블로그(http://blog.naver.com/mulaebook) 대문에 새겨진 구절. 고로 이 책들은 모두 ‘헌책’이다. 동네책방은 물론이고 헌책방이 골목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건 오래된 일. 반가움이 앞선다. 게다가 책방지기 장우석 씨는 무척 젊다.
“아주 어릴 적부터 헌책방을 자주 다녔어요. 대구역 쪽에 헌책방 거리가 있었는데, 6․25때 피난민들이 싸들고 온 책을 난전에서 팔다가 리어카가 되고 또 가게가 되어 100여 개까지 생겼어요. 대학 다닐 때부터 본격적으로 헌책을 수집했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대구 서점거리의 20여 개 향토서점도 모두 문을 닫았고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지역 책방, 지역 문화를 살리는 길이 없을까 오래 고민했죠.”
책방지기 장우석
그 고민이 지난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물레책방으로 태어나 이달 23일이면 첫 돌을 맞는다. 물레는 걸음마를 뗐을까. 헌책방 하나 보탠 게 큰 의미가 있겠냐 싶겠지만 그 걸음걸음이 씩씩하다. 이날만 해도 올해 《만주의 아이들》이라는 르포집을 펴낸 박영희 작가의 출판 기념회로 책방은 시끌시끌했다. 박영희 씨는 대구에 둥지를 튼 시인으로, 물레책방에서 모시는 작가나 예술가 등은 대부분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사들이다.
이런 제법 규모가 큰 행사는 종종, 규모가 좀 작은 ‘청소년 인문학 교실, 밑줄긋기, 책방에서 다큐보기’ 등의 행사는 매주 혹은 매달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프로그램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작지만 단단하게 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녹색평론>의 전 편집주간이자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인 변홍철 씨가 한 달에 네 번 아이들을 만나 ‘인문학 교실’을 진행하고, 독립영화 감독이었던 장우석 책방지기가 ‘책방에서 다큐보기’를 변홍철 씨와 함께 만들어 나간다. 책과 콘서트가 만나는 이색적인 행사 ‘밑줄긋기’도 거의 매달 꼬박꼬박 이어져, 교사, 농부, 사서, 시인, 의사, 주부, 노래꾼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로 낭독, 이야기, 노래를 해왔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분들을 모셔 공연하고 이야기하고 여러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씁니다. 대구 지역 출판물이나 작품만 따로 모은 책장도 만들었지요. 지역 문화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우석 씨는 헌책들도 주로 대구의 오래된 헌책방에서 직접 구입해 온다. 장 씨가 아꼈던 지역의 헌책방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물레의 겉모습도 여느 헌책방의 풍경과는 다르다. 길게 늘어뜨린 전구 조명이 쏟아내는 노란 불빛 덕에 책방은 무척 아늑하다. 푹신한 소파도 있고, 더치커피와 송화차 가격이 적힌 작은 칠판도 보인다. 책방 한쪽 귀퉁이에 부채 모양의 아담한 무대도 갖추어 행사 공간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노래방으로 쓰다가 방치된 건물에서 3톤이 넘는 폐기물들을 끌어내고 벽돌과 페인트로 마감, 헌 목재를 가져다 책장을 짰다니 놀랍다. 생명 운동을 하는 단체 ‘땅과 자유’ 동무들이 도왔고, 영화를 찍으려고 모아놓은 장 씨의 500만 원이 종자돈이었다. 물레를 함께 이끌어가는 변홍철 씨와 조동현(대안학교 산자연학교 교사) 씨도 모두 ‘땅과 자유’에서 만난 이들.
물레에서는 책 사이를 미로처럼 찾아 헤매거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물찾기를 할 필요도 없다. 인문학, 경제, 역사, 언론, 영화, 세계문학, 대중음악 등 장 씨가 발품 팔아 모은 1만여 권의 책을 촘촘히 분류하고 깔끔하게 진열했다. 무엇보다 물레에는 대개
헌책방의 주 소득원인 참고서나 교과서, 과월호 잡지가 보이지 않는다. 장우석 씨는 단호하다. ‘물레의 성격에 맞는 책만 들인다.’ 인문, 사회, 철학 도서를 중심으로 책방지기가 편애하는 문학서들도 유독 많다. 헌 책을 매입하지도 않는다. 그날 필자가 들고 간 ‘헌책’들은 문화 행사의 입장권이자 기증 도서가 되었다.
팔지 않고 볼 수만 있는 책들도 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우리말 연구가 이오덕, 농부작가 전우익 선생 등의 책인데,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되신 분들로 모두 경북 지역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었다. 장우석 씨가 그 중 ‘권정생 선생님 3주기 추모 행사’(2007년 5월 17일 타계)를 열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으로 논문을 쓰기도 하셨던 이계삼 선생님(《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저자, 교사), 《몽실언니》를 영화로 만든 이지상 감독을 모셔 이틀에 걸쳐 권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함께 봤습니다. 추모 문집 《애국자가 없는 세상》도 만들었고요. 특히 이지상 감독은 권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뵌 기억을 떠올려주셨지요.”
‘자발적 가난’을 택한 권정생 선생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되짚는 책방지기. 소박하고 창조적인 노동의 기쁨을 상징하는 ‘간디의 물레’에서 따왔다는 이름 ‘물레책방’ 위로 열쇳말이 떠오른다. 순환과 나눔, 그리고 실천이라는.
대구시 수성구 범어4동 202-13, 053-735-0423, http://cafe.naver.com/mulae/
차 한 잔 | 《만주의 아이들》의 박영희 작가
“르포의 소재는 슬픔 이상의 고통, 즉 가장 아픈 곳”
‘박영희 시인과 함께하는 만주 기행’ 사진 편집 영상이 스크린 위를 흐른다. 만주 곳곳 독립열사들의 묘역,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인 도문 변경선, 발해 궁터, 싱겁게 웃고 있는 만주족 아이들까지.
박영희 시인이 만주를 처음 찾은 것은 2004년이다. 그 후로 13번이나 만주를 오갔는데 작가에게 그곳은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었다고. 2008년 펴낸 《만주를 가다》를 중심으로 펼쳐질 만주의 여러 이야기 중 첫 번째가 《만주의 아이들》이다.
특히 박 작가는 르포의 소재는 ‘슬픔 이상의 고통’, 즉 가장 아픈 곳을 택하게 된다면서, 한국과의 수교로 해체 된 조선족 사회의 아이들이 받은 고통을 담았다고 말했다.
만주의 아이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 이유는.
흑룡강성의 혜림소학교 옆에서 하숙할 때 조선족 아이 미혜를 만났다. 미혜와 친해졌을 때 아빠엄마 이야기 물어봤더니, 갑자기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십년 동안 아빠 얼굴을 못 봤다’고 말하는 거다. 조선족 부부가 함께 한국에 갔다가 덜컥 가진 미혜를 100일 만에 혜림으로 데리고 온 후, 엄마도 곧 다시 한국으로 일하러 들어갔다. 엄마아빠 얼굴도 모른 채 성장한 거다. 헌데 그 아이가 선생님의 도움으로 십년 만에 서울 독산동 셋방에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부모님과의 3박 4일간의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후로 조선족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만나보자고 생각하고 지난해 4월 출발해 집안, 왕청, 유하, 하얼빈 등 동북 3성의 조선족 자치주들을 돌았다.
조선족의 가족 해체가 얼마만큼 심각한가.
우리는 한국에서 힘든 업종에 종사하는 조선족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에 온 47만 조선족 중 10만 정도가 이혼한 상태라는 건 모른다. 아이들은 ‘엄마아빠의 마음이 변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한다. 또 그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사춘기를 지낸다. 가장 고통스러운 건 아이들이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떠밀리는 곳이 바로 학교 앞 집단 하숙소다. 한족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러면서 아이들이 조선말을 잃어간다. 한국어를 못하는 4세대, 5세대들이 거의 절반이다. 부모님과의 소통은 더욱 어려워진다.
만주의 아이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아이들이 보통 방학 때 한국에 간다. 부모가 오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덜 들기 때문이다. 한국에 다녀간 아이들은 한국의 드라마나 노래와는 너무 다른 현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부모님이 사는 곳, 하는 일이 모두 너무 척박하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 빈부의 격차가 한국만큼 심하지 않다. 동북 3성은 바다가 없어 평생 바다를 보지 못 하는 사람이 70% 정도라는데, 한국에서 바다를 보고 간 아이들이 해준 얘기를 들을 때만큼은 마음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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