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많이 길들여였지." 대학에 갓 입학해서 만났던 친구를 서른 둘에 다시 만났을 때 제가 했던 말이었습니다. 무엇에 길들여 졌냐고요? 20대의 분노, 욕망, 신념과 맞서던 바깥 세상으로부터 길들여진겁니다. 어쩌면 그때는 '바깥 세상'이란 존재하지도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깨만 스쳐도 17대 1로 싸울 수 있는 분노는 바깥 세상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 거니까요.
대체 누구랑 싸우고 있는지도, 내가 휘두르는 것이 정의인지 칼인지도 몰랐던 20대. <잘한다, 청춘>을 보며 안도합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았을 것 같은 20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갔음을요. 그리고 또 한 번 안도합니다. 누구랑 싸우고 있는지, 무엇과 화해해야 하는지, 분노와 욕망, 신념을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 지 아는 20대를 만나서요. (사실 저자는 20대라고 하기엔 너무 늙었다는 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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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젊음을 마냥 찬양하고 싶은 건 그가 옳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책을 쓰고 세상에 내놓은 이순간에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향해 몸을 돌려놓고, 고민하고 괴로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가장 무서운 20대지요. 제법 순하게 길들여 졌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30대가 보기에는 참 무섭습니다.
우선 그가 말하고 싶어하는 글밥들을 나열해보면 참 겁이 없습니다. 중앙과 지방, 정치의식, 쇼핑중독, 사랑, 욕망, 커피, 고통, 인권, 잉여, 꼰대 같은 사오십대, 백수, 가난, 몸, 페미니즘...이 중 하나만 들이대도 외면하고 싶을만큼 묵직한 소재들입니다. 글이 그렇지 않은 것은 참 다행입니다. 무거운 책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해 '그의 힘이 진지한 독서력에서 나왔겠구나' 짐작하게 만듭니다. 반면 그의 솔직담백한 경험담들은 '찌질한, 잉여의, 울기도 애매한' 20대의 모습을 까발립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무기는 20대에 의한 '공감'이며, 두번째 무기는 20대의 이유있는 '항변'이고, 세번 째 무기는 20대의 '반성'입니다.
공감과 반성은 그럭저럭 이해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는 왜 묻지도 않은 항변을 하는걸까? 그게 궁금해집니다. 20대인 그가 강요받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걸 짐작하게 할 만한 구체적인 이유는 책의 막바지쯤 나옵니다. 저자는 용감하게도 '사회과학서로는 이례적으로 10만부가 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한'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를 까기 시작합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살짝 실망했다. 20대에게 눈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20대를 88만원 세대라는 고유명사로 불리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곳곳에서 읽어지는 80년대 학번의 향수와 꼰대스러움은 나를 종종 기겁하고 경기 들리게 하였다.
우석훈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지는 이 책의 표지에도 잘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이다. 하지만 나는 바리케이트도 짱돌도 불편했다. 누군가에게는 토플 책과 토익 책 그리고 토익 성적표가 짱돌이고 바리케이트이다. 게다가 김예슬 선언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고려대 짱돌은 사회에 파장을 줘도 지잡대 짱돌은 개소리로 치부되기 일쑤인 상황에서 우석훈의 "짱돌을 들라"는 20대에게 또하나의 책임론일 수밖에 없다.
'책임론일 수밖에'. '불편한 바리케이트와 짱돌'. 제가 <88만원 세대>를 읽어봤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우선은 저자의 말을 따라짚어봅니다. 말하자면 책임론은 무책임하고 바리케이트와 짱돌은 멀고도 멀다는 얘깁니다. 촛불집회로 유희하고, 쇼핑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한 당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속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몸으로 체험한, 문화 유전자를 재생산 하는데 가장 유리하게 설계된 20대가 듣기에는 개소리라는 겁니다. 우석훈이 어떻게 말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분노가 어디서 출발했는 지는 알 것 같습니다. 20대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말합니다.
기성세대들의 놀이판은 재미없다, 우리 이렇게 찌질하지만 우리 방식대로 잘할려고 하고 있다, 반성도 할꺼지만 너희 처럼은 아니다, 우리 인권감수성 고통감수성도 가져보고 대들자, 등등.. 통쾌함도 있고, 진실한 반성도 있습니다.
그는 또 미묘한 문제들을 한꺼풀 벗겨 짚고 넘어가려는 시선도 보여줍니다. 쉼없이 재생산되고 예쁘게 포장되는 여행기록에 대해서 '사람들의 가난한 삶을 찍고 그것을 향수로 버무리고 여유로 덧입혀서 생산해내는 여행기'라고 비틀고 그런 여행기 속에서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이자 관람자로서의 잔인함이 탄생한다고 말하죠. 때론 속 깊은 반성도 합니다. '치약 선전에서 사람의 입 냄새가 닿는 거리가 46센티미터라고 하던데, 그건 아니다. 46센티미터는 내가 타인과 두는 마음의 거리다.'라며 '그 사정거리에서 안도한다'고 말이죠. 결국 '나는 사회성이 참 좋다고 자위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집니다.
간당간당 20대인 그의 요구는 점점 분명해집니다. '조이고 도망치지 말 것을 주문'하는 세상헤게, '인생의 유예기간이었다는 빛나는 20대의 청춘마저 침범하여 닦고 조이고 기름칠할 것을 주문'하는 어른들에게 유예기간을 달라, 우리의 잉여질은 그런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의 시선에 간혹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노력'을 요구합니다. 광화문에서 진행된 잡년행진에 대해서는 "내가 잡년처럼 입건 뭐처럼 입건 내 몸에 손대지 마!"라는 메시지를 끌어내 몸의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합니다. 이 두 부분에 대해서는 목소리 내기에 그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에히리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언급하며 '인내'만 부각한 것도 아쉽구요. 언제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 20대의 그녀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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