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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 청춘
잘한다, 청춘 2011/12/30

"나? 이제 많이 길들여였지." 대학에 갓 입학해서 만났던 친구를 서른 둘에 다시 만났을 때 제가 했던 말이었습니다. 무엇에 길들여 졌냐고요? 20대의 분노, 욕망, 신념과 맞서던 바깥 세상으로부터 길들여진겁니다. 어쩌면 그때..

서점 명가 로드뷰❹ 대구 물레책방

'간디의 물레'처럼 이야기가 줄줄 감겨 나올 것만 같은 대구 수성경찰서 옆으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서 50미터쯤 올라갔을까. 작은 네모 간판이 보인다. 연둣빛 바탕에 쓰인 글씨 ‘물레책방’(이하 ‘물레’). 재밌는 이야기들이..

디지털 in, 디지털人-'나모이북에디터' 박광섭 대리

나모 인터랙티브(이하 ‘나모’)가 지난 달 ‘나모이북에디터’(Namo e-book Editor, 이하 ‘이북에디터’)를 내놓았다. 이북 에디터는 1인 전자 출판 시대를 맞아 기존의 출판용 데이터나 워드 프로세서로 작업한 파일..

서점 명가 로드뷰❸ 대전 계룡문고

이야기가 넘치고 빛그림이 흐르는 일흔 다섯 번째 ‘서점 나들이’를 가다 막 어린티를 벗은 여자 아이 셋이 ‘왜요 아저씨’를 향해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넨다. 재잘재잘 말을 붙여오는 아이들에게 이 대표는 이내 반갑게 고개를 끄..

3월 eBook new Book
3월 eBook new Book 2011/03/09

<멀티북> 아기돼지 삼형제 이지넷 만듦 이지넷에서 개발한 Toddler eBook 시리즈로 전문 성우가 읽어주는 앱북이다. 동화를 읽어 주는 기능 뿐 아니라 부모님이나 아이가 직접 동화를 녹음 하여 들을 수 있으며, 동화 캐릭..

2월 eBook new Book
2월 eBook new Book 2011/03/09

<이북> 발리홀릭, 신들의 섬에서 노닐다 임진숙 지음 | eStory 펴냄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저자가 발리의 매력을 잊지 못해 다시 ‘신들의 섬’을 찾는다. 발리의 예술촌 우붓에서 민박하며 현지인들과 섞여 발리의 속살을 체험..

왜 전자책을 좋아하지 않을까?-Q&A로 푸는 ‘전자책’ ②

서울 서대문 사회과학서점 ‘레드북스’에서 진행한 《홍기빈, 자본주의를 말하다》 미니 강연회 참석자들의 물음표 선택 ⓠ 왜 전자책을 좋아하지 않을까? 알기 쉬운 ‘전자책 사용 설명서’를 종합하고자 마련한 ‘독자참여형 전자책 Q&..

지면으로 만나는 ‘전자책 세미나’②

한국전자출판협회 주최 ‘2011 글로벌 협업 프로젝트’ 제안 설명회 출판사와 개발사를 이어주는 ‘애플리케이션’ 다리 한국전자출판협회(회장 최태경)가 중소출판사와 중소개발업체의 협업을 돕고자 제안 설명회를 마련했다. 지난 1월..

연필로 꾹꾹2010/12/26 04:09


"나는 뒤꿈치가 말끔하잖나. 겨울되만 모다 뒤꿈치가 지저분해서는. 발목도 안시렵고."
 
덧버선 예찬론을 시시때때로 늘어놓으시는 큰 할머니. 집이 지척이라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댁을 찾는다. 

결혼 하고 4년동안 매 겨울이면 들어오던 말. 귓등으로만 듣던 그 얘기가 솔깃했던 건 올 겨울이다. 

능력도 안 되는 일에 뛰어들어서는 끙끙거리며,

최장 하루에 12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던 게 한 6개월쯤 됐나보다.
 
창가에 자리잡은 컴퓨터 책상이 내 일터. 

현대식 샤시가 아닌 우리집 창문은 바람구멍 역할을 제대로 한다. 문이 닫혀 있어도 찬바람이 슝슝. 

(지난 봄, 우리골목 여섯집 중 유일하게 도둑이 들어오려다 나간 집이 우리 집인데, 이 시끄러운 창문 때문인것 같다.)

손은 물론이고 발이 시려워 죽을 지경인거다. 양말 두겹, 어그부츠, 털실내화를 다 동원했지만 발은 끔찍이도 차다.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덧버선 칭찬을 늘어놓으시던 할머니. 지금 생각하니 내가 눈까지 반짝거리며 들었나보다. 

며칠 전 할머니가 건내 주신 검은 봉다리 안에 들어있던 서울산업근제 '대왕표' 덧버선. 노란 꽃무늬가 새초롬하다.  

보온 효과는 아직 실험해보지는 않았다. 큰 기대는 안한다. 겨울은, 원래, 추우니까. 

어쩌면 추워서, 더 따뜻한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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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
연필로 꾹꾹2010/10/14 12:50
오랜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몇 분이 소식을 물어오셔서 '불친절한 불로거씨'가 뻔뻔하게 재기할 명분을 마련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는 지난 3개월 간 혹독한 신고식을 치루고 왔습니다.  

월간지 <라이브러리 앤 리브로> '지면'에 안착하기 위해 잠시 글쓰기 '창'을 접었었지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사실, 뭘 공부해야하는 줄도 모르고 시작했죠.

책을 읽고 쓰는 '북로거'에서, 책을 '취재'하고 '전달' 해야 하는 '기자'로의 전환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당혹, 절망, 한계, 호기심 등등이 제가 느낀 감정들입니다.

그 중 '한계'를 가장 많이 느끼고 있지만 조심스럽게나마 '재미'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웹'에서 지구로의 귀환이 만족스러워 질 때 즘 이런 포스팅을 해보고 싶기도 하네요. 

'블로거 기자되기' 

네, 백만년 후의 일입니다. 

고로, 덜익은 기사라도 올려보겠습니다. 오른 쪽 얼개 중 '연필한다스의 기사' 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0월호 <라이브러리 앤 리브로>에는 '박지선 객원기자'로 '작은 서점' 기획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전에 잡지 소개를 간단히 해야겠지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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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
연필로 꾹꾹2010/05/20 14:40
25년 동안 일가를 이루고 그 사이 수많은 짐승들이 들고 난 이 집에서 저는 인간객일 뿐이었습니다. 비록 '시집 온' 자격으로 이층 집의 일층 안주인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누구보다 특별한 새 아기가 늦게 도착한 시간을 만회하며 장씨 일가를 평정했습니다. 그리고 곧 세 마리의 짐승이 간격을 두고 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며 안주인 행세를 해냈습니다. 처음 삽살개에게 '쌀', 두 번째 페르시안 고양이에게 '보리', 지난 주 강원도에서 내려온 아기 발바리에게 '수수'. 전적으로 지극한 동물애호가인 두 장씨 형제의 솜씨입니다. 



"진돌이를 때리려거든 차라리 저희를 때리세요." 시어머님 입으로 회자되는 이 말은 장씨 일가의 역사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어머님은 말많은 자식들이 말을 안들으면 먹이고 있는 짐승을 때리겠다고 협박하셨고 이 말은 늘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했다더군요. 사내아이 둘 키우기란 만만치 않은 법이죠.
 
가축을 짐이 아니면 가족으로 생각하는(책임감의 무게란!) 제게 의지와 무관하게 들이닥친 세 마리의 동물은 별로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2년 동안 털 한 번 안 빗긴 삽살개의 엉킨 털을 잘라보시겠다고 나서신 시아버님이 쌀이의 귀를 반 쯤 잘라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으로부터 '만날 일을 그렇게 한다'는 싸잡아식 비난을 받으신 아버님은 미안함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며느리의 전화를 받고 달려오셨습니다. 

귀는 지혈이 잘 안되는 부위라고 하더군요. 간단히 치료를 마치고, 여러 애견 미용센터에서 이렇게 큰 개는 안받는다는 퇴자를 맞은 후 겨우 쌀이의 털을 밀어주겠다는 미용사를 만났습니다. 견종이나 무게에 따라 마취제를 투여하고 일명 바리깡이 더께 진 털을 툭툭 떨어뜨리는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힘 좋고 발랄한? 쌀이는 한계치의 주사약을 추가로 투여받고도 약발이 듣지 않는 저력을 보여주더군요. 미용사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결국 제가 쌀이를 안고 달래가며 두시간 여만에 왼쪽 귀를 제외한 삭발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음 타자는 보리. 이 방치된 귀족 고양이는 뭉개진 자존심만큼 털이 뭉쳐버렸습니다. 어렵사리 구해 온 바리깡으로 세 가족이 마루에 앉아 낑낑거려봤지만,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고양이에게 조금도 잔인해지지 못하는 신랑은 보리의 등만 흉측하게 밀어버린 채 휑하니 강원도로 가버렸습니다. 또 결국 자전거 바구니에 보리를, 안장 시트엔 아이를 싣고 요전의 미용사에게 보리를 맏긴 건 저였습니다. 

한달이 조금 넘은 아기 발바리 수수를 돌봐줘야하는 임무도 역시 제 차지네요. 뭘 기르는데는 소질이 없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던 제가 엄마가 되고, 또 세 마리나 되는 짐승의 뒤를 살피고 있다는게 여전히 실감나지 않습니다. 

뭘 죽이는 법 없이 때론 살려내기도 하고, 언제든 식구들에게 따뜻한 밥을 내놓고, 간이 잘 맞는 국을 끓이는 '엄마 자질'은 따로 있다고 쭉 생각해왔습니다. 언제부턴가 '엄마'와 '며느리'라는 자리가 저를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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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
연필로 꾹꾹2010/04/25 18:54
면도칼 같기도 한, 그러나 반대로 뭉툭하고 포근하던 비둘기호 기차표를 끊어, 이제는 간이역이 된 '대신역'에서 기차에 오릅니다. 버스로 한 번 갈아 타고 대구 섬유시장에 가는 길입니다. 멋쟁이 대구 처녀들은 스카프를 즐겨맸습니다. 아, 그랬죠. 대구는 패션의 도시였다죠. 

우리는 도시의 목욕탕도 들르고 섬유시장에서 50원 100원 하는 짜치 천을 떠옵니다. 엄마 치맛자락을 날개처럼 붙들은 동생과 내가 보입니다. 장판처럼 감아놓은 천들을 마 단위로 끊어 팔고 나면 두루마리 휴지의 마지막처럼 쓰기에도 버리기에도 난감합니다. 엄마는 그걸 사러 가는 겁니다. 몸빼바지 같은 걸 만들려고 따로 천을 구입하기도 했지요. 천들을 개켜 담은 검은 봉지는 돼지고기만큼이나 묵직합니다. 

돌아오는 길은 어찌나 멀던가요. 목욕과 호빵과 딸기 우유로 나긋나긋해 진 몸, 눅눅해지는 어스름 저녁 해, 우리 남매는 대도시 퇴근길 만원버스에서 사이좋게 엄마의 발등에 올라 앉곤 했습니다. 졸기도 했을테지요. 짐을 내려놓을 바닥이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대신동으로 돌아오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두나무 과수원집 바로 아래가 우리집입니다. 눕혀질 리 없는 녹색 의자에 비둘기처럼 몸을 말고 꾸었던 꿈도 모두 달아나는 귀가 시간입니다.

엄마는 재봉틀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아니죠. 돌리기 전에 신문지에 초크로 옷그림을 먼저 그립니다. 직각자와 활처럼 휘어진 자, 줄자가 놓여있습니다. 철컥거리는 쇠가위가 본을 뜹니다. 이제 짜치천이 종이 인형처럼 오려집니다. 엄마 앞에 바짝 다가서서 그 종이 옷을 걸치는 시간이 엄숙합니다. 

재봉틀에 앉아 연신 페달을 밟는 소리가 자장가 이기도 하고 따르릉 시계이기도 했습니다. 일하기 좋은 낙낙한 몸빼바지를 여러 꽃무늬 천으로 만들어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공급하고 곁들여 골라온 색색의 짜치천으로는 제 옷을 만들었습니다. 


바람이 가르마를 탄 벼자리 같이 벌어진 칫솔을 잘라서 쓸만큼 살림이 형편없었지만 제 옷만은 달랐습니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최고 였죠. 세계 최고 였습니다. 만날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입었습니다. 작았던 제 몸은 조각천의 상상력이면 충분했습니다. 작은 건 짧은 치마로 넓은 건 원피스로 두꺼운 건 바지로, 병설유치원 학예회때는 저를 포함해 다섯 명이 선보인 발레의 드레스도 주문 제작했습니다. 

엄마는 제 웨딩드레스도 만들었습니다. 어디든 집이 아니라면 좋았던 대학 입학 이후로는 살도 부딪히지 못했던 모녀가 결혼을 앞두고 벌인 낯선 의기투합이었습니다. 만원치 흰 레이온 천을 끊고 레이스도 그만큼 사고 엄마는 제 주문에 따라, 3개월 후 늘어날 배 모양에 따라, 드르륵 드르륵 3일 동안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저는 치마폭에 구슬을 달았습니다. 실은 좀 엉성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옛날처럼 좋았습니다. 엄마의 웨딩드레스는 제가 아빠품이 아닌 엄마품에서 떠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어쩌다 손주 중독증에 걸린 외할머니는 서영이를 위한 드레스 두 벌과 치마를 만들어 열무김치와 함께 보냈군요. 아이는 좋아서 거울 앞에서 춤을 춥니다. 동네가 죄다 웨딩샵인 이곳에서 서영이의 드레스 열광은 당연한 것이었죠.

어쨌든 저 무가지와도 같은 천들이 다시 요술을 부렸네요. 정말 새 봄입니다. 긴긴 여행을 마치고 가구배열이 바뀐 집으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조각천으로 화려한 인생을 꿈꿨을 엄마와 인형놀이의 주인공이었던 딸이 또 다른 딸에게 옷 물림을 합니다. 조각난 꿈이 기운 인생의 그림이라고 하는게 맞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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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
연필로 꾹꾹2010/03/28 15:14
강원도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때아닌 봄 폭설로 삽질을 헤대면서(여기까지는 군대 같다) 한옥짓는 기술을 배우고 있는 남편이 들고 온 작품들이다. 이번 주 부터는 초보 고수가 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다고 하니, 한동안은 여유자적 나뭇가지나(적송같은 걸 통째로 쓰는 대들보에 비하면) 깎고 있을 틈이 없을 것이다. 얼굴 보기는 더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월급쟁이에게 시집을 왔으나, 기러기 부부가 되었다. 20년이 넘게 한 집에서 살아온 그가 이제 집 아닌 곳에서 이불을 끌어올리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떨어져 지내지 않길 약속했던(우리가 의견일치를 본 것은 그것 뿐이었다. 그러나 붙어서 맨날 싸웠다) 일이 마치 이렇게 될 것을 암시했던 것 같다. 그가 처한 가장 두려운 상황(정말?)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 지가, 우리에게 관건이라면 관건이다.
 

목침과 도마


저 둥근 원통의 길쭉한 나무가 무슨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첫느낌은 매우 회의적이었으나 허리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척추뼈를 따라 가급적 편안히 누워 머물고 있으면 등허리가 매우 시원하다. 지압이나 경락의 원리쯤 되나 보다. 자기 몸의 무게를 이용해 압박하니 합리적이고 덜 수고롭다. 선물받은 우리 엄마의 후기는 '하루도 안빠질 만큼 너무 좋다'. 

요가 강사일을 하던 때, 갑작스레 몰려온 무릎 통증에-사실 무릎 뿐은 아니었지만-어째야 하나 동동거린 적이 있었다. 몸은 재산이었고, 요가는 몰라도 요가를 가르치는 직업은 몸을 아프게 했다. 하루 꼬박 네 시간을 엉망진창 호흡으로 원숭이처럼 자세만 반복해야 했으니 그닥 수명이 긴 티칭법은 못된다.(내게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시 따로 배우고 있었던 펄싱요가의 선생님은 액자틀을 하나 주면서 무릎 통증이 나아질거라고 했다. 무릎 아래, 즉 양쪽 오금에 액자틀을 수직으로 세우고 누워있는 너무나 간단한 방법이었다.(발이 공중에 떠 있어야 다리의 무게를 이용할 수 있다) 어떤 경혈에 잠시 압박을 가하고 풀어주면 혈액순환이 훨씬 잘 되는 듯한 느낌 때문인지, 오금이 뜨거워지면서 무릎이 가벼워졌다. 따로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지 않았지만 강사일을 쉬면서 자주 걷고 매일 이 빈 액자 요법(?)을 했더니 무릎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몸에 대한 일종의 위안이나 암시 같은 것이었겠지만, 목침이 그렇듯이 몸의 무게를 이용하는 이 압박법을 적당히 신뢰하게 됐다. 

이 밖에도 배가 아플 때, 테니스공을 아픈 자리에 대고 잠시 엎드려 있으면 통증이 가신다.(대고 있을 때는 원래 고통보다 심하긴 하지만)


아이 의자와 상자




처음 한옥마을에 간다고 했을 때는 물론이고 나무깎기에 만날 끙끙거리고 있을 때도, 난 그의 손재주가 '과연 집을 지을만 했던가'를 걱정했지만 동료들에게 이 상자를 7개나 주문? 받았다는 말을 듣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분명히 신나하고 있는 눈치다. 두둑한 월급봉투 만큼 든든한 것도 없지만, 즐거운 일을 찾았을 때의 만족감은 비길데 없이 단단하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언제쯤이면 그가 만든 집을 소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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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
연필로 꾹꾹2010/02/27 16:39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 지난 혹평에 얽힌 사건이 기사로 떴습니다. 당시 한 악플러가 당긴 불씨로 서평이 출판사의 홍보물로 전락하게 될것을 염려한 7명의 블로거가 공동성명을 낸 후, 곧장 언론으로부터 답신을 받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블로거에게 묻습니다-잠시 연필을 놓으며
'공짜책' 한권의 무게는?   

<경향신문> 2010/2/26

[책동네 산책]인터넷 서평계를 보호하라
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경향신문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출판사들은 ‘이런 책이 나왔다’는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부터가 치열한 경쟁이다. 출판사가 직접 광고를 하는 고전적인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이 내려주는 평가와 입소문이 절실하다. 언론 서평에 목을 매던 이들에게 인터넷, 특히 블로거들의 등장은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아마도 개별 블로그의 카테고리 가운데 빈도수가 매우 높은 것 가운데 하나가 책 읽은 소감을 적는 코너가 아닐까 싶다.

이런 트렌드를 눈치챈 출판사들은 익명의 독자들이 자사의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독자들을 찾아나섰다. 인터넷 서점에서 매일 벌어지는 온라인 서평 이벤트가 그것이다. 대형 출판사들은 자체적으로 인터넷 서평단을 모집·관리하면서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책이 파워 블로거가 언급하면서 ‘대박’으로 이어진 사례가 나오자 출판사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블로거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출판계에서 일반화된 블로거 마케팅 행태를 출판사나 블로거들이 돌아볼 만한 작은 소동이 얼마 전 블로그 세계에서 발생했다. 이른바 ‘파워 북로거’로 알려지면서 이벤트 응모 차원을 넘어서서 출판사들로부터 무료로 신간을 많이 받아보고 있는 한 블로거가 특정한 책들에 대해 아쉬운 점, 미흡한 점 등을 신랄하게 꼬집은 글들을 써서 따로 마련한 카테고리에 모아뒀다.

그는 좋은 책을 만났을 때는 행복했지만 ‘별로’인 책들에 대해선 무시하는 수법을 썼다고 말했다. 공짜로 받은 책을 악평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형편없는 외식을 하고도 ‘맛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어 책의 문제점을 짚는 글들을 썼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방문자가 “당신이 뭔데 출판사에서 홍보해달라고 (공짜로) 보낸 책을 함부로 서평을 하느냐”면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댓글을 달았다.

이웃 블로거들은 분노했다. ‘신간 홍보용으로 받은 책에 대해 악평을 하면 안되는 것인가’ ‘블로거가 출판사의 홍보요원인가’ 등의 비난 어린 질문이 쏟아졌다. 열성적인 블로거 7명은 이번 일의 전말을 담은 글을 내게 보내왔다. 이들은 다른 블로거들이 ‘받은 값을 하기 위해 좋은 평을 쓸 수밖에 없었다’ ‘원치 않는 책은 외면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질문도 답도 블로거들이 했다. 공짜라 하더라도 책이 출판사를 떠나는 순간 평가의 몫은 서평자에게 있다. 혹여 ‘정성 어린’ 악평을 비난한다면 너무 근시안적 사고방식이며, 출판사와 저자가 보기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질 낮은 악평을 해줄 사람에게 책을 보냈다면 마케팅 실패로 봐야 한다.

이 사건과 관련은 없지만 블로거 마케팅에 대해 출판사들의 고민도 없지 않다. 일부 영악한 독자들이 블로거 서평단에 들기 위해 깊이도 내용도 없는 서평으로 도배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심한 경우 책을 보내주지 않으면 악평으로 도배하겠다는 취지로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인터넷 서평 카페도 있다고 한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서평들은 책을 매개로 무한히 펼쳐진 소중한 세계이다. 인터넷 서평계마저 화장품과 가전제품, 육아용품 등 다른 상품들에 관한 블로그 상품평들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자정기능을 잃고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버리는 쪽으로 흘러버린다면 너무나 큰 손실이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원문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1002261751255&code=900308

<한국일보> 2010/2/26
 
[책갈피] 서평은 주례사가 아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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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서평 블로거 7명이 공동 성명을 냈다. 요지는 이렇다. 서평은 주례사가 아니다. 서평 블로거는 출판사 홍보 대리인이 아니다.

이 성명은 서평 블로거 '연필한다스'가 자신의 블로그에 만든 '멋대로 신간 욕하기' 코너에 혹평을 올렸다가 악플에 시달린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신이 뭔데 함부로 혹평을 하느냐, 저명 평론가인 양 착각하지 말라"는 인신공격성 악플에 연필한다스는 11일 '책을 읽는 블로거에게 묻습니다'라는 칼럼을 써서 서평의 역할에 대한 공론을 일으켰다. 서평 이벤트나 신간 홍보용으로 받은 책은 좋게 평가해야만 하나, 혹평은 너무 잔인한 일인가, 블로그에는 좋아하는 책 좋은 책만 올려야 하나. 서평의 역할과 서평 블로거의 자세를 묻는 이 질문에 댓글과 트랙백으로 많은 의견이 오갔다. 블로거는 비평할 자격이 없다, 공짜책은 혹평하면 안 된다는 감정적인 주장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서평의 올바른 역할과 자세를 돌아보는 진지한 의견이 더 많았다.

그중에 "무분별한 호평보다 분별있는 혹평이 더 귀하다"는 한 블로거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내심 뜨끔했다. 언론의 서평은 과연 제몫을 바르게 하고 있는가 싶어서.

서평은 다이제스트가 아니다. 단순 독후감도 아니다. 지은이와 정신적으로 씨름해가며 나름대로 곱씹어 보고 맛은 어떤지, 뭐가 부족하고 뭐가 좋은지, 출판 지형에서 차지하는 의의는 무엇인지 살피고 가려야 제대로 된 서평이라고 생각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마구 칼을 휘둘러서도 안되고, 주례사에 그쳐서도 안 되는 게 서평이다. 엄격한 기준과 성실한 비평. 어렵지만 그게 정도일 것이다.

기사원문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culture/201002/h2010022621493684210.htm&ver=v002



이후로 해당 악플러의 IP를 스팸으로 등록했지만 휴지통엔 쓰레기같은 댓글이 추가되었더군요. 이 험악한 일에 책이 희생양이 되는 일만은 막기 위해 관련자로 추정되었던 악플러의 댓글이 더이상 공개되지 않은 것에 대해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연함은 고사하고 보복을 과제로 여기는 이 인물이 혹여 책을 세상에 내놓은 누군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거꾸로  출판사의 안목과 자세를 성토해야하지 않냐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제 혹평에 대한 정당성과는 다른 차원으로)
 
공교롭게도 이 사건 이후, 다른 책의 서평에 대해(해당 카테고리에 포함된 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관계자로 추정되는(IP추적 검색의 힘이 상당하더군요!) 인물이 남긴 두 개의 연이은 댓글은 자라 보고 놀란 제 가슴이 솥뚜껑보고 놀라기에 충분했습니다. 집필의 의도대로 평가받지 못한데에 대한 아쉬움 정도로 넘기긴 했지만, 이런 일들이 예상보다 만연해질것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보다(일정 비판을 감안하고라도) 정체를 숨긴 얄팍한 행동이야말로 웹계의 가장 두려운 후환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해야할까요?                     

이후로 '멋대로 신간 욕하기'는 카테고리 내 포함된 서평과는 무관하게, 신중하지 못했던 네이밍을 반성하고 오해를 살 소지를 감안하여 '비뚤게 엿보기'로 바꾸었고, 좋은 의견을 남겨주신 블로거의 충고를 따라 다른 시각의 서평을 링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다분히 사적인 공간을 꾸리기 위해 출발했던 블로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공공의 책을 다루기에 '개인적인''주관적인'의견일 뿐이야,라는 변명은 참으로 초라할 것입니다. 공자는 "오직 어진 자만이 남을 좋아 할 수 있고 남을 미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사 인물통찰>을 쓴 저자는 이것을 공정한 마음을 가질 때에만 인간을 비판할 수 있고 칭찬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인간대신 '책'을 문장에 대입한다면 제 비판의 눈이 어질어질 때만 제 기호가 정당해질 수 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독서가의 눈이 어질어지려면 정독과 다독을 필두로 이익에 눈이 멀지 않고, 사적인 호불호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중심잡기에 애써야함을 되뇌기도 합니다. 하지만 블로그가 어디까지나 1인의 매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질지 못한 모습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이 모순의 극복이 전적으로 제 손에 달린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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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
연필로 꾹꾹2010/02/20 10:01


책장을 새로 들였습니다. 중후하고 멋스러운데다 튼튼하기까지 한 나무책장은 아니지만, 백목에 옹이무늬로 나무 흉내를 잔뜩 낸 와이드 형 입니다. 가짜 같던 서울살이에 비한다면 유독 실제 자연발광 했던 주인의 친구가 멀고 먼 길을 내려와서 주문해 놓은 사랑스런 놈이죠. 반지하와 옥탑을 오르내리며 주인과 비길데없는 수난사를 겪고 오늘에 와서야 허리한 번 펴봅니다. 두고두고 감사할 일입니다. 

비좁은 고시원에선 베니어판에 차곡차곡 기대어 203호와 내통 중이었고, 주인이 밤낮으로 정신줄을 놓았던 어떤 집에서는 붉은 십자 노끈 한 번 풀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행선지도 모른채 트럭에 던져지면 풀어놓기 무섭게 다시 묶여졌고, 한 번은 반지하까지 흘러든 중랑천 강물을 흡뻑 흡수하기도 했었죠. 물론 세탁기나, 주인이 애지중지 하던 삼성 레이저 젯 프린터기와 함께 였지만요. 아마도 그날 처음 저는 속살까지 햇볕을 쬈다죠. 몇 날 며칠을 바삭거릴때까지 건일광욕을 견딘 우리들은 여전히 우글쭈글한 기억이나 표지와 내용물이 분리된 외상이 남아있답니다. 이제는 곱씹어 음미할 훈장같은 추억거리쯤 되겠네요. 중요한 건 이토록 번듯하게 거실 한 쪽 벽을 독차지 하는 날이 오다니, 책 팔자 드디어 폈습니다.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무 책장은 사치로 느껴집니다. 주인의 지갑은 가벼웠고 조립식 MDF만으로도 기꺼웠던 때였습니다. 부스럼과 연약한 내공으로 휘거나 뭉그러지긴 했지만 "요샌 우리가 쓰던게 없어."란 주인 친구의 말에는 쓸쓸함이 조금 뭍어 납니다. 잦은 이사로 무거운 건 버리고 갈 판에 나무책장은 오히려 짐이었던 때였죠. 어디선가 얻어온 너덧개의 나무판자에 얼기설기 벽돌을 괴기만하면 불평할 것 없는 보금자리였습니다. 주인은 왠일로 별다른 일이 없으면 눌러살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어렴풋이 나무냄새, 시트냄새 나는 이 가짜 백양목 책장 안에 우리를 성의껏 분리해서 진열합니다. 

내가 필요하기만을 기다리는 일은 세상 물정 모르는 팔자 좋은 책들이나 할 소립니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꼼꼼히 한 자 한 자 빼놓지 않고 읽어내고, 책답게 글씨로 꿈을 꾸고 여백으로 사색합니다. 삽화로 유희하고 쪽 수로 시간을 샘합니다. 적어서 기록한 자도 떠올리고 적어서 만든 자도 기억해냅니다. 무엇보다 읽는 자의 눈을 재빠르게 감응하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 입니다. 그럼 나는 모퉁이가 접히고 책날개가 부러지면서 나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해나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몸집이 부풉니다. 한 번도 문을 걸어 잠근 일이 없지만 아무에게나 열려있는 건 아닙니다. 우린 인간보다 폐쇠적이지만 인간 만큼 사람을 고르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무게는 책장 배달부가 공언한데로 '장난이 아니지만' 우리의 한 줄은 깃털 마냥 가뿐하고 분명하여 이마를 스치는 미풍에도 마음먹은데로 실려 다닙니다. 

우리에겐 실로 네모 반듯하고 견고한 집 같은 건 필요없습니다. 스스로가 집이며 문이자 심방입니다. 지금 잠시 몸을 기대고 있는 곳은 add. 와이드 볼륨36T,Mdf,Pb,고급데코 시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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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
연필로 꾹꾹2010/02/16 06:09
'공짜'는 마음의 빚을 남기기도 합니다. 시식경쟁이 치열한 두부 코너에서도, 맛본 곳의 두부를 구입하는 편이 예쁜 '상도'입니다. 아니면 맛있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정도'입니다. 그도 아니면 마음에 드는 언니 쪽을 고르는 게 '주도'입니다. 고객은 왕이기 때문에 이 중 어떤 도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곳이 '돈으로 굴러가는 시장'입니다.

'공짜책'을 이 공식에 대입할 수 있느냐,는 충분한 고민거리였습니다. 

공짜책은 무겁다?

책이 까놓고 '상품'이라면 '고객은 모두 맞다'라는 대기업의 극진한 대접마냥 허세를 부려봐도 손해볼 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아날로그적인 물건중 하나인 '책'은 여전히 쓰임보다는 진실을 전달하고, 보여지고 사라지는 시대에 지난한 '읽기'를 강요합니다.

수수께끼풀기님은 책을 읽는 데 들인 '시간'과 리뷰 쓰는 데 들인 '노동'을 고려하지 않는, 공짜라는 전제가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공짜책을 받으니 스스로 저명한 비평가나 오피니언 리더라고 착각한다'는 데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 하다거나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은 것처럼 여기는 것은 바로 시식이나, 선체험, 서평단에 숨은 '마음의 빚'입니다. 하지만 물건을 써보고 호불호를 정하는 것과 책을 읽고 '평가'를 생산해 내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네모와 종이라는 물건의 소비적 편리함이 아니라 그 안에 꿈틀대는 글자를 읽어나가는 '생산에 대한 생산'이 곧 독서이고 독후감이고, 서평입니다. 서평은 책으로부터 발생하긴 했지만 책 자체는 아니며, 책의 부산물도 아닙니다. 홍보자료는 대표적인 책의 부산물이며 북로거가 '재생산'이 아닌 소비적인 홍보자료 투의 정보만 전달한다면, 홍보단이란 명칭을 따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되풀이 된다면,   

북로거는 '읽는 것' 더 나아가 '쓰는 것'으로 충분한 노동력을 제공했다고 봅니다. '좋게 쓰는 것'을 마음의 빚으로 담아 둔다면, 그 블로거는 스스로 수수한 독자의 입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1379246님의 '저자의 생각은 무조건 존중받아야 한다'는 데에 '읽는 것'자체가 책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한 참 좋다님의 발언은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파파야님 역시 형식적이거나, 교훈적인 주례사 비평에 대해 경계하는 긴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판매자에게 혹평은 무겁다?

'책 공짜로 주고 욕먹는' 출판사의 입장은 과연 어떨까요? 뒤통수 맞은 걸까요? 

은연중에 기대하는 호평에 대한 약간의 배신감은 느낄 수 있겠죠. 그게 맨 처음의 감정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두 권으로 도박을 벌일게 아니라면, 호평이 판매고를 늘리고 혹평이 독자의 취향을 엿보거나 타겟을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이 블로거나 서평단의 흔들리지 않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욕하지 않기로'계약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블로그를 하나의 독립된 매체로써가 아니라 수하에 두고 홍보에 이용하려는 움직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도서출판 예문당에서는 정확히 이런 의견을 남겼습니다.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새롭게 책을 대할 예비 독자에게, 글을 작성한 저자에게,
또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을 출판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시면 되는 것 아닐까요.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요.

이 정도 목적성을 가지고 성장의 발판이 될만한 서평을 남기기란 쉬운일은 아닙니다. 다만 서평단은 '독자'를 대변하고 출판사는 독자의 '의중'을 파악하고, 저자는 의견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지극히 당연한 각자의 자리에서의 역할을 이행한다면 '모두가 성장'할 수 있겠지요.  

비용으로 따진다면, 신간 한권 내는데 2천만원 이상은 소요되고, 그 신간의 초판이 1년안에 팔릴 확률은 10%가 채 안되며, 그 신간의 승패는, 출간후 3주 안에 결정나게 된다(예문당)는 출판계의 입장에선 혹평이 결코 달갑지 않겠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판도를 바꾸려고 하는 행위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답은 늘 '좋은 책'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비판될 도서는 더욱 신중하게 읽혀야 함이 블로거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정당이 정부와 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누가 정당의 행위에 신뢰를 가질 수 있을까요. 부끄러운 로비정치 시대, 정치가는 그들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경분리'란 구호가 떠올랐구요. 블로거가 받는 책은 절대 '로비'의 산물이 아닙니다. '제안' 혹은 '평가'의 정당한 입장으로 바라봐져야 하며, 그렇게 쓰여져야 합니다. 북로거는 저자나 출판사로부터 완벽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출판사나 저자 역시 '마음의 빚'을 기대하는 마케팅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무분별하게 도서를 공급하고 노출을 노리는 방법은 일부 혹평으로 견제될 필요도 있습니다. 또한 진정한 홍보라면 자신들이 만든 책을 아깝지 않게 읽어줄 블로거를 물색하는 걸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참좋다 님께서 이어주신 긴 글에는 '마케팅 일거야, 서평단 수작이지 뭐' 라는 반응이 벌써 심심치 않게 흐르고 있는 비뚤어진 서평단의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게 해가 되는 것은 '좋지 않은 책을 좋다고 말할 때 있는 것이지 좋지 않은 책을 나쁘다고 말할 때 있느 것'이 아니란 말씀 역시 귀담아 듣게 됩니다.

작가는 혹평이 쓰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혹평이야말로 죽을맛일 겁니다. 게다가 저명한 평론가도 아닌, 파워블로거 조차도 아닌, 평생 무관할 것만 같았던 블로거가 감히! 남긴 혹평에 기대치 않은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세상에 글을 내 보낼때 자신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받아 들일 준비를 해야 할지 않을까 합니다. 긍정적인 평가에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정당한 비평 혹평은 받아 들이고 자신을 성장 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겠지요.'라고 또 예문당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석입니다. 저 역시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존중받기 위해서만 책을 낸다면, 그분은 이미 상상력을 잃은 불행한 작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을 달게 받았던 작가의 링크가 댓글에 걸려 소개합니다. 
http://blog.aladdin.co.kr/767481145/3135163

북로거는 비평의 자격이 없다? 

푸른 레몬 님은 블로거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편협함을 걱정했습니다. '아마추어 주제에''지나치게 주관적이다''비평가인냥 착각한다.'같은 징후를요. 아마추어 비평가로서, 주관적으로 쓰는 일이 과연 심판받을 만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약 책이 '프로 비평가에게''칼 같이 객관적으로''비평문에 의해서'만 언급된다면 그건 그들만의 책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것입니다. 또, 그런 평가방식을 원한다면 홍보방식도 과감히 바꾸어야 하구요.
 
블로거는 아마추어임을, 주관적임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선택의 장이 될 수 있는 비평가임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건 결국 책을 향한 독자의 손이 증명할 일이며,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누군가를 통해서 희석될 일입니다. 맛 없는 책을 맛 없다고 말할지, 사장시킬지도 모두 스스로 결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빚'에서 자유로운 문화가 정착된다면 평가받지 못한 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것입니다. 

저는 사는 책과 보내주는 책을 동일하게 놓고 평가합니다. 사서 본 책이라고 해서 마음 껏 감정적으로 굴면서 욕하고, 지적하고, 폄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구입한 책이 나빴다면 더 혹독한 비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글감옥에서 온 편지님은 '서평은 비평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의미심장합니다. 비평가라도 되야한다는 말인가? 할 수도 있지만 '좋고 싫음'을 밝힐 의도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비판할 건 비판하고 평가할 건 평가하는게 '서평단'의 진짜 의미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고해서 비평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출판사가 블로거를 이용하거나, 블로거가 출판사를 이용하는, 금새 드러날 꼼수일 뿐입니다. 

일부 서평단 모집 광고에 참여해 본적은 없었지만, 이런 경우에도 '호평'과 '혹평' 나아가 '무평'까지 블로거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 어떤 반응이라도 책의 가치를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잣대일테니까요. 특히나 출판사가 블로거를 간별해서 책을 보내주는 요즘의 마케팅 방식에서 블로거는 보다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대안 

사상 유래없는 악플러의 방문을 기회로 '책을 읽는 블로거에게 묻습니다'라는 포스팅을 작성할 때만해도 이만큼의 문제의식은 제게 없었습니다. 그저 다른 블로거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가 궁금했을 따름이었죠. 하지만 그 일로 이미 왜곡된 서평단 문화나, 북로거나 출판사의 입장에 대해 비로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긴 고민의 결과물, 끝까지 읽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덧붙여, '멋대로 신간 욕하기' 카테고리 안에 포함될 책들은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지신 블로거의 서평을 (적극적으로)찾아 링크할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제안은 구름배님께서 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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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
연필로 꾹꾹2010/02/11 13:21
gugu /글을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님의 글들엔 가시가 돋아 있습니다. 물론 비판이 앞 서는 글엔 이유들이 있겠지요...진정 글쟁이는 수용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비판은 비판을 낳으니까요. 편파적이거나 오만한 글들은 어필이 안됩니다. 참고하십시요.
결국 무명은 유명인이 되지 못하는 그 한계의 벽에는 비판이라는 굴레가 있지 않을른지???

게스트 북의 이 글을 읽었을때만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될거라고까지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정중한 '비판'을 담은 gugu님의 글은 비쥬얼 강한 하이쿠 선집에 대한 비평을 올린 이후였습니다. gugu님은 끝내 약간의 모독을 담긴 했지만, 악플보다 무플이 두려운 블로거로서 반가운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마침 '북로거'에 대한 정체성에 물음표를 단 시점이기도 했고, 그런 연유로 심심한 서평에 이런 저런 시도를 일삼던 중, 수위 높은(gugu님에게?) 비평 하나에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북로거가 된 일년 사이, '인터파크 북& 2기 기자단''온북 서평단'이란 소박한 명함을 달게 되었고, '매체 리스트'에 올라 신간들을 누구보다 빨리 수혈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주 박스로 도착하는 신간 더미에 기쁨의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출판사들의 러브콜을 냉대로 내칠 수 없는 부담감이 함께 몰려왔습니다. 당시 제 목표는 '더 많은'책에 대한 서평을 작성해서 구애에 응답하는 일이었습니다. 가히 노동에 가까운 일을 여태까지도 충만하게 해오는 중이지만, 적잖은 회의가 싹트더군요.

읽기에도, 생각하기에도 좋은 책을 만났을때의 행복은 의심할 것이 없겠지만, 문제는 '별로'인 책들에 있었습니다. 결국 '별로라면 무시하면 되지'수법으로 따끈한 신간을 사장시키고 있었죠. 당연히 <프요일, 연필한다스의 책담기>에는 훈훈한 책 소개로만 가득찼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만 허기가 집니다. 형편 없는 외식을 하고도 '맛없다'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가 된 기분이랄까요. 

영화 시사회, 주류 시음회, 마트의 시식코너, 제품 사용 후기에 등장하는 노골적인 별점제까지는 아니어도, 출판사의 홍보대리인으로 전락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철칙이 있었지만, 어느새 칭찬 일색인 제 블로그를 돌아보자니 의도하지 않은 쓸쓸함이 감돌더군요. 게다가 내용과 감상 정도를 전달하는 서평이 매출 상승으로 까지 이어지는 정비례 그래프가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골라놓은 책에 대한 확인사살 정도라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수동적인 서평'이 과연 북로거가 나아갈 방향이냐는 것입니다. 밋밋한 독후감과 도서 구매 욕구 사이의 함수가 저로써는 불투명하게만 보였습니다. 북로거가 책을 파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을 돋우어야 하는 건 분명해보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책으로 엮는 북칼럼을 시도한 '책자루'와 책의 인상적인 구절을 옮기고 되도록 말끔하게 간단한 평을 싣는 '한줄로 신간 엿보기'를 구상했고, 다양한 방향으로 책을 다룰 수 있다는데 자축하기도 했습니다. 

불현 이런 생각도 스칩니다. '모든 책이 좋다'라고 말하는 건 '모든 책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보다 나쁜일이 아닐까 하는 연필한다스의 개성 말입니다. '연필 한다스의 블로그는 연필 한다스 다워야 한다'는게 가장 큰 모토로 떠오르더군요. 그렇지 않다면 출판사의 보도 자료를 제공하는 인터넷 서점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래서 과감히 책의 나쁜 부분들을 짚고자 '멋대로 신간 욕하기' 카테고리를 추가 하기에 이릅니다. 저자나 출판사 측에서는 불편할 내용이 포함될 수 있음을 감안하고, 혹은 매체 리스트에서의 탈락을 예상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죽어야 땟깔도 좋지 않겠습니까. 특히나 세상에 책을 내놓는 저자의 용기라면 이미 비판을 염두하리라 생각하는 건 무리일까요. 혹평 또한 출판사에서 그리 버겁지 않은 홍보의 한 결과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지레짐작 해보기도 했습니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1인 미디어 시대의 블로거들에게 필요한건 좌로 보나 우로 보나 '개성'과 '객관'이리라 여깁니다. 책을 먼저 맛본다는 이유로 달콤한 말만 올린다는 건, 블로그의 기능을 역행하는 일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듭니다. 주관없는 객관 없듯이, 제 비평이 누구에게나 입맛에 맞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조금은 독한 제 서평에 대한 비판은 제가 바랬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별로였지만 너는 좋았다'면 재고해볼 수 있는게 뭇 인간들의 즐거운 소동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니 말에 기분 나빴다' 까지만해도 조금 마음이 쓰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마음쓰며 살자고 블로그 짓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헌데, 또 하나의 비판적 서평 이후 그 gugu님이 다시 들러 주셨더군요. 이번엔 무척 혹독하게, 저를 약간 흔들어 놓았습니다. 필명은 달랐지만 IP 주소는 같은, 무비님의 악플 전문을 소개 합니다.(혹시 저작권 위반에 해당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님은 누구시길래 책을 받고 함부로 서평을 하나요? 기분 되게 나쁘네.
마치 위에서 아래로 한 줄 깔고 내려보듯이 써 내린 글때문에 당신때문에 판매량이 줄 수도 있어요.
누가 부탁을 했나구요?? 책을 보낼땐 홍보하려고 보냈지 오히려 역효과를 기대하여 보냈을까요?
출판사 멍청한 사람들도 가끔 있네.
이렇게 책 보낼곳이 없을까?
그 시간에 책의 홍보나 하지, 보잘것 없는 블로그에 낙서하듯 끄적인 글때문에 진정 화가 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반찬이나 잘 만들고 집 청소나 잘 하세요. 뭐 글을 쓴다고 어울리지도 않게 온갖 잡소리 해대면 뭐하나. 자신이 아줌마라는 것을 잊은 것 아니나? 혹 무슨 저명한 평론가인냥 착각하는 것 아닌가?

제가 고민했던 부분을 짚어주시니 감사하기도 합니다. 칭찬에 판매량이 늘고, 비판에 판매량이 준다는 사실은 당연하겠지만, 저런 걱정을 당하는 제 영향력에 기뻐해야 하나, 짜증나야 하나 잠시 고민했답니다. 블로거가 오로지 저 하나 뿐이라면 공식이 어설프게 나마 성립되겠지만, 제 한표가 전체 판도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미친 사태는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출판사들이 원하는게 '홍보'라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싣고, 일부분을 비판하는 작업이 오히려 판매에 호조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제 기대입니다.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 흔히 논란이 되는 경우, 논란 자체가 책을 시끄럽게 만들지는 않을까요. 속 깊은 윈윈게임이라고 이름해도 될지. 출판사에도 여쭙고 싶네요.

또 1인 미디어 시대는 분명 블로거를 저명한 평론가 만한 지위를 확보하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저명한 평론가만큼 지체높게 검증된 글은 아니겠지만 수백, 수천만 네티즌들의 검열의 칼날에 늘 노출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감히 낙서하듯 책을 욕하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 김에 북로거, 혹은 책을 읽는 블로거에게 묻고 싶습니다.

서평 이벤트나, 신간 홍보용으로 받은 책에 대한 평가는 착해야 하는게 도리일까요?
혹시 질 나쁜 정보 양산을 돕는 건 아닐까요?
출판사의 홍보 대리인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객관성을 유지 하는 것 이상으로, 
혹평을 가하는 건 역시 너무 잔인한 일일까요?
좋아 하는 책, 좋은 책만 올리는 가장 안전한 방법만이 순리일까요?   

   
       

*이후에 있었던 이런저런 글 

공짜책, 한 권의 무게는?  
북로거의 항변에 대한 언론으로부터의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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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
연필로 꾹꾹2010/01/08 16:44

여전히 눈이 녹지 않고 있네요. 근 일주일간 고양이 사료를 사기 위해 빙판길 자전거 곡예를 한, 엊그제를 빼고는 꼼짝도 못하고 있습니다. 칩거가 수렴의 시간인 것처럼 블로그로의 외출도 자제했습니다. 창가에 위치한 컴퓨터 책상이 외풍 때문에 좀 오싹한 것도 있었지만 구들방에 허리를 뒤집어가며 책 속으로 빠져드는 시간이 몽롱하고 황홀했습니다. 땅위에 정지해버린 눈처럼 기록할 책들이 쌓여가자 그것들이 저혼자 녹아내리기에는 햇빛이 며칠이나 더 모아져야할지 장담할 수 없게 되었네요.
 
책에 떠밀려 다시 블로그의 글쓰기 창을 띄웁니다. 책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이 블로그는 아무래도 저보다는 책이 주인인양굽니다. 책 속에서 영감을 얻고 책으로 통합하고 책으로 꾸려나가는 이 웹 라이프에 어떻게하면 좀 더 꿈틀거릴 무언가를 첨가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며칠이었습니다. 읽고 쓰는 자동기술적 노동이 아닌, 손을 뻗고 만질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고 있음이 확실해집니다. 단순한 정보통으로서의 역할도 나쁘진 않지만 상당히 소모적인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짐을 적재한 화물열차가 굉음을 내고 시야를 빠져나가듯 그렇게 횡한 시간들이 반복되곤 하거든요. 물론 '나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해서 포스팅의 물리적인 양 말고도 단단한 삶의 지층이 쌓여가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약속된 친구가 없는 이 공간이 저를 머뭇거리게 하는게 사실입니다. 아직도 블로그의 고유 성질에 몸을 꼭 맞추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이름짓는 그대로가 블로그가 되는 한계없는 자유로움이 낯선지도 모릅니다. 

아기가 사람으로, 학생이 자유인으로, 솔로가 유부녀가 되는 언제나 옮겨다닐만했던 틀이 사라진 '블로거'라는 이 광활한 영역이 죽도록 배출하기만 했던 지난 일년간의 블로깅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삶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블로그에서 다시 묻고있는 샘입니다. 

그저 즐겁고 편안하게,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우울하고 낭만적으로, 재미있고 사색적으로 그럴듯하게 운영하는 방법은 무수하게 많겠지만 심각해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가 다시 출몰합니다. 침잠하지 않고 물살을 제 몸처럼 타넘는 배들의 운전법을 아직 배우지 못합니다. 마치 언젠가는 가라앉는게 배의 운명인양 꼭 한번 바닥을 보고싶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블로그에서의 글쓰기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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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필 한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