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마음의 빚을 남기기도 합니다. 시식경쟁이 치열한 두부 코너에서도, 맛본 곳의 두부를 구입하는 편이 예쁜 '상도'입니다. 아니면 맛있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정도'입니다. 그도 아니면 마음에 드는 언니 쪽을 고르는 게 '주도'입니다. 고객은 왕이기 때문에 이 중 어떤 도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곳이 '돈으로 굴러가는 시장'입니다.
'공짜책'을 이 공식에 대입할 수 있느냐,는 충분한 고민거리였습니다.
공짜책은 무겁다?
책이 까놓고 '상품'이라면 '고객은 모두 맞다'라는 대기업의 극진한 대접마냥 허세를 부려봐도 손해볼 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아날로그적인 물건중 하나인 '책'은 여전히 쓰임보다는 진실을 전달하고, 보여지고 사라지는 시대에 지난한 '읽기'를 강요합니다.
수수께끼풀기님은
책을 읽는 데 들인 '시간'과 리뷰 쓰는 데 들인 '노동'을 고려하지 않는, 공짜라는 전제가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공짜책을 받으니 스스로 저명한 비평가나 오피니언 리더라고 착각한다'는 데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 하다거나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은 것처럼 여기는 것은 바로 시식이나, 선체험, 서평단에 숨은 '마음의 빚'입니다. 하지만 물건을 써보고 호불호를 정하는 것과 책을 읽고 '평가'를 생산해 내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네모와 종이라는 물건의 소비적 편리함이 아니라 그 안에 꿈틀대는 글자를 읽어나가는
'생산에 대한 생산'이 곧 독서이고 독후감이고, 서평입니다. 서평은 책으로부터 발생하긴 했지만 책 자체는 아니며, 책의 부산물도 아닙니다. 홍보자료는 대표적인 책의 부산물이며 북로거가 '재생산'이 아닌 소비적인 홍보자료 투의 정보만 전달한다면, 홍보단이란 명칭을 따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되풀이 된다면,
북로거는 '읽는 것' 더 나아가 '쓰는 것'으로 충분한 노동력을 제공했다고 봅니다. '좋게 쓰는 것'을 마음의 빚으로 담아 둔다면, 그 블로거는 스스로 수수한 독자의 입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1379246님의 '저자의 생각은 무조건 존중받아야 한다'는 데에 '읽는 것'자체가 책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한 참 좋다님의 발언은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파파야님 역시 형식적이거나, 교훈적인 주례사 비평에 대해 경계하는 긴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판매자에게 혹평은 무겁다?
'책 공짜로 주고 욕먹는' 출판사의 입장은 과연 어떨까요? 뒤통수 맞은 걸까요?
은연중에 기대하는 호평에 대한 약간의 배신감은 느낄 수 있겠죠. 그게 맨 처음의 감정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두 권으로 도박을 벌일게 아니라면, 호평이 판매고를 늘리고 혹평이 독자의 취향을 엿보거나 타겟을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이 블로거나 서평단의 흔들리지 않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욕하지 않기로'계약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블로그를 하나의 독립된 매체로써가 아니라 수하에 두고 홍보에 이용하려는 움직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도서출판 예문당에서는 정확히 이런 의견을 남겼습니다.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새롭게 책을 대할 예비 독자에게, 글을 작성한 저자에게,
또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을 출판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시면 되는 것 아닐까요.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요.
이 정도 목적성을 가지고 성장의 발판이 될만한 서평을 남기기란 쉬운일은 아닙니다. 다만
서평단은 '독자'를 대변하고 출판사는 독자의 '의중'을 파악하고, 저자는 의견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지극히 당연한 각자의 자리에서의 역할을 이행한다면 '모두가 성장'할 수 있겠지요.
비용으로 따진다면, 신간 한권 내는데 2천만원 이상은 소요되고, 그 신간의 초판이 1년안에 팔릴 확률은 10%가 채 안되며, 그 신간의 승패는, 출간후 3주 안에 결정나게 된다(예문당)는 출판계의 입장에선 혹평이 결코 달갑지 않겠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판도를 바꾸려고 하는 행위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답은 늘 '좋은 책'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비판될 도서는 더욱 신중하게 읽혀야 함이 블로거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정당이 정부와 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누가 정당의 행위에 신뢰를 가질 수 있을까요. 부끄러운 로비정치 시대, 정치가는 그들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경분리'란 구호가 떠올랐구요. 블로거가 받는 책은 절대 '로비'의 산물이 아닙니다. '제안' 혹은 '평가'의 정당한 입장으로 바라봐져야 하며, 그렇게 쓰여져야 합니다. 북로거는 저자나 출판사로부터 완벽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출판사나 저자 역시 '마음의 빚'을 기대하는 마케팅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무분별하게 도서를 공급하고 노출을 노리는 방법은 일부 혹평으로 견제될 필요도 있습니다. 또한 진정한 홍보라면 자신들이 만든 책을 아깝지 않게 읽어줄 블로거를 물색하는 걸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참좋다 님께서 이어주신 긴 글에는 '마케팅 일거야, 서평단 수작이지 뭐' 라는 반응이 벌써 심심치 않게 흐르고 있는 비뚤어진 서평단의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게 해가 되는 것은 '좋지 않은 책을 좋다고 말할 때 있는 것이지 좋지 않은 책을 나쁘다고 말할 때 있느 것'이 아니란 말씀 역시 귀담아 듣게 됩니다.
작가는 혹평이 쓰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혹평이야말로 죽을맛일 겁니다. 게다가 저명한 평론가도 아닌, 파워블로거 조차도 아닌, 평생 무관할 것만 같았던 블로거가 감히! 남긴 혹평에 기대치 않은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세상에 글을 내 보낼때 자신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받아 들일 준비를 해야 할지 않을까 합니다. 긍정적인 평가에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정당한 비평 혹평은 받아 들이고 자신을 성장 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겠지요.'라고 또 예문당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석입니다. 저 역시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존중받기 위해서만 책을 낸다면, 그분은 이미
상상력을 잃은 불행한 작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을 달게 받았던 작가의 링크가 댓글에 걸려 소개합니다.
http://blog.aladdin.co.kr/767481145/3135163
북로거는 비평의 자격이 없다?
푸른 레몬 님은 블로거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편협함을 걱정했습니다.
'아마추어 주제에''지나치게 주관적이다''비평가인냥 착각한다.'같은 징후를요. 아마추어 비평가로서, 주관적으로 쓰는 일이 과연 심판받을 만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약 책이 '프로 비평가에게''칼 같이 객관적으로''비평문에 의해서'만 언급된다면 그건 그들만의 책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것입니다. 또, 그런 평가방식을 원한다면 홍보방식도 과감히 바꾸어야 하구요.
블로거는 아마추어임을, 주관적임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선택의 장이 될 수 있는 비평가임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건 결국 책을 향한 독자의 손이 증명할 일이며,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누군가를 통해서 희석될 일입니다. 맛 없는 책을 맛 없다고 말할지, 사장시킬지도 모두 스스로 결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빚'에서 자유로운 문화가 정착된다면 평가받지 못한 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것입니다.
저는 사는 책과 보내주는 책을 동일하게 놓고 평가합니다. 사서 본 책이라고 해서 마음 껏 감정적으로 굴면서 욕하고, 지적하고, 폄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구입한 책이 나빴다면 더 혹독한 비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글감옥에서 온 편지님은 '서평은 비평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의미심장합니다. 비평가라도 되야한다는 말인가? 할 수도 있지만 '좋고 싫음'을 밝힐 의도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비판할 건 비판하고 평가할 건 평가하는게 '서평단'의 진짜 의미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고해서 비평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출판사가 블로거를 이용하거나, 블로거가 출판사를 이용하는, 금새 드러날 꼼수일 뿐입니다.
일부 서평단 모집 광고에 참여해 본적은 없었지만, 이런 경우에도
'호평'과 '혹평' 나아가 '무평'까지 블로거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 어떤 반응이라도 책의 가치를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잣대일테니까요. 특히나 출판사가 블로거를 간별해서 책을 보내주는 요즘의 마케팅 방식에서 블로거는 보다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대안
사상 유래없는 악플러의 방문을 기회로
'책을 읽는 블로거에게 묻습니다'라는 포스팅을 작성할 때만해도 이만큼의 문제의식은 제게 없었습니다. 그저 다른 블로거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가 궁금했을 따름이었죠. 하지만 그 일로 이미 왜곡된 서평단 문화나, 북로거나 출판사의 입장에 대해 비로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긴 고민의 결과물, 끝까지 읽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덧붙여, '멋대로 신간 욕하기' 카테고리 안에 포함될 책들은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지신 블로거의 서평을 (적극적으로)찾아 링크할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제안은 구름배님께서 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