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넘치고 빛그림이 흐르는
일흔 다섯 번째 ‘서점 나들이’를 가다
막 어린티를 벗은 여자 아이 셋이 ‘왜요 아저씨’를 향해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넨다. 재잘재잘 말을 붙여오는 아이들에게 이 대표는 이내 반갑게 고개를 끄덕인다. ‘왜요 아저씨’는 다름 아닌 대전 계룡문고의 이동선 대표다.
대전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중앙로에서도 가장 큰 서점의 사장님과 스스럼없이 일면식을 나누는 아이들도 아이들이었지만, 다 큰 아이들과 눈맞춤을 하며 선 채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이 대표의 모습이 천진하다. 익살스러운 구연을 마친 그는 계룡문고를 ‘너희들의 바깥 서재라고 생각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친근한 인사치레일까.
서점은 도서관처럼 도서관은 서점처럼
1996년부터 대전 중앙로를 지켜왔던 계룡문고는 2년 전 어린이들을 위해 따로 10평 남짓 한 방을 마련했다. 요즘 공공도서관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가족열람실’ 같은 곳이다. 여기저기 책들이 널려 있고 간섭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와 엄마들이 따로 또 같이 어울려 책을 고르고 읽어주는 소란스런 가운데에서도, 구석마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서점은 도서관처럼, 도서관과 학교는 서점처럼 변해야 합니다.”
물을 새도 없이 갖가지 서점 철학을 툭툭 던져놓는 이 대표. 그 중에서도 수수께끼처럼 들렸던 이 말의 속뜻은 ‘서점은 좀 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교육적으로 변해야 하고, 공공 기관들에는 좀 더 공격적인 독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서점 나들이’, 유․초․중․고 학교와 연계한 ‘서점 견학’, ‘고함쟁이 엄마 학교’, ‘책 읽어주는 아빠 모임’, 책을 읽어주는 일요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일요일마다 두 권의 그림책을 선정하는 ‘일요일은 읽요일이다’ 코너 등이 모두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 행사들이다.
때마침 ‘서점 견학’과 ‘75회 서점 나들이’가 함께 있었던 2월 둘째 주에 계룡문고를 찾았다. 밋밋하고 정숙한 견학 프로그램을 상상했다면 80명이 넘는 아이들이 서점 안의 갤러리가 떠나갈 듯 ‘왜요?’를 합창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견학 행사의 마지막에 그림책을 한 권 들고 등장한 이 대표는 자기를 ‘이상한 서점 아저씨’라고 소개한 후 문제의 《왜요?》그림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대표와 번갈아 가면 동화책을 읽기 시작한다. ‘우리 공주님 옷 입어야지’ 하면 아이들이 일제히 ‘왜요’를 외치는 식이다. 이 대표가 서점 견학 행사를 시작한 이후로 자칭타칭 ‘왜요 아저씨’로 불리는 이유다. ‘책 읽어주는 아빠’라는 아이디로 계룡문고 카페(http://cafe.daum.net/krbookv),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는 이 대표는 이미 늦둥이 아이에게 수천 권의 책을 읽어준 베테랑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이야기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드는 아이들
이 날은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이끌고 ‘국제문화교류단’의 하은숙 단장이 계룡문고를 찾았다. 자유롭게 서점을 구경하고 책을 골라온 아이들이 ‘서점이란 □□다’의 빈칸을 채우거나 ‘책을 고른 이유’를 발표했다. 이어 음향 효과와 함께 동화책을 바탕으로 계룡문고에서 직접 제작한 빛그림이 상영된다.
10년 넘게 이 행사를 이어왔다는 현민원 부장이 아마추어라고는 할 수 없는 솜씨로 《강아지똥》을 읽어준다. 몇 달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서점 견학 행사가 있을 정도로 학생과 교사, 부모님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서점 견학 행사가 끝나자 오후 1시부터는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서점 나들이’가 어린이방에서 이어진다.
“특별한 행사는 아니에요. 서점에 오시는 분들, 특히 아이와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일 때 할머님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저희는 빛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현 부장은 대단한 일이 아님을 재차 강조한다. 하지만 귀를 쫑긋 세운 아이들이 낯모르는 할머니 무릎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드는 모습은, 적어도 서점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3시쯤 방에 불이 꺼지고 전래동화 《신기한 독》의 빛그림과 함께 현 부장의 맛깔스런 구연이 다시 시작된다. 주변의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이야기에 푹 빠진 눈치다. ‘놀토’(초중고의 노는 토요일)에 행사를 해달라는 부모님들의 요청으로 일정을 바꿀 만큼 서점 나들이는 호응이 좋다.
앞으로 ‘어린이 교육 연구소’까지 꾸리고 싶다는 이 대표는 몇 해 전 방문한 일본의 그림책 마을 ‘목성마을(木城 키조마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림책 서점과 그림책 도서관 두 건물을 중심으로 그림책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가 태어난 깊은 숲속의 마을을 대전에도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대학교는 물론이고 초․중․고교 앞에도 서점이 없어요. 게다가 양서를 쉽게 접할 수 있거나 아이들이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전의 학교 앞마다 청소년어린이서점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위한 독서 행사, 문화 행사들을 하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대전의 유초중고 숫자를 이미 줄줄 꿰고 있었다. 그 숫자는 그의 꿈이 꿈으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 같은 밑그림 같았다. 대전 중구 선화동 226번지 삼성생명 지하 042-222-4600
차 한 잔 ☆ 이야기 들려주는 할머니 박해자․최신강
이 날 두 분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제목도 출판사도 없다. 대전 안산도서관의 이야기 들려주는 할머니들의 동아리 ‘보물단지’를 운영하면서, 도서관에서, 또 이렇게 서점으로 이야기 출장을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선물한다. 서로 이웃이기도 한 두 할머니는 번갈아가면 기자의 우문에 정성껏 대답해주셨다.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셨나요?
도서관을 자주 찾다가 우연히 국제문화교류단의 하은숙 대표님을 알게 되었고, 이야기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위해 인형극도 하고 있죠. 계룡문고에는 동아리 할머니들이 번갈아 가며 매달 들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나요?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떤 이야기든 좋아하는 것 같아요.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려고 해요. 또 이야기책을 많이 읽고 머릿속에 저장하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라야 좋답니다.
이 활동을 시작하고 어떤 점이 좋으신가요?
우선 일이 있으니 삶에 의욕이 생겨요. 또 명절 같은 때 요만한 손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인기 만점이죠. 자식들이나 며느리도 좋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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