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운(외계인)은 인간의 지능에 비견될만한 우주선과 무기를 만들만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소수민족이 겪어야만할 핍박을 20년간 견뎠을까.
왜 인간을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았을까.
왜 지구에 왔을 때 미개한 문명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디스트릭트9>은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도 지금껏 보아왔던 외계인과는 구분된다.
차별화 전략으로 인해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다면 프라운 자체가 모순덩어리다.
외계 혹은 미지의 세계가 지구를 침범하고 위기에 빠트렸던 지난 날 영화사, 몇 명의 주인공은 지구의 구원자가 되었다.
<디스트릭트9>에도 또 한명의 영웅이 탄생하긴 하지만 그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영웅일 뿐이다. 외계인 크리스토퍼 혹은
훗날 지구에서의 고통을 거두고 돌아갈 희망이 남아있는 나머지 외계인들에게. 아니면 철저히 본인을 위한 일이다.
한마디로 그는 결코 지구를 구하는 자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구는 외계인으로인해 위험에처한 적도 없다.

그들은 오히려 외계인의 겉모습을 한 소외받는 종족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주지역 '슬럼'은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인간적 현실을 보여준다. 아마도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환상의 극적인 면모일 것이다. 이제껏 강력한 적敵으로 즐겨 다뤄졌던 그들이 고양이 먹이나, 인간의 법적 구속력만을 들먹거려 통제되는 하찮은 계급으로 변했다. 외향은 조금 다르지만 깊은 슬픔과 인간적 동지애까지 느껴지는, ET들을 불러모은 마을같다.
모선을 움질일만한 에너지를 모으는 데 20년이 걸렸다는 설정으로 질문에 소박하게나마 답을 해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정말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인간보다 덜 폭력적이고, 오히려 방어능력이 더 발달된 평화로운 종족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반면 프라운이 간직한 모순은 인간의 두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디스트릭트9>의 외계인은 아이같기도 하고 미개인 같기도 한 생명체의 본능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살상무기를 발명했고 육고기를 통해 종족을 번식하는 거대해진 두뇌력을 자랑한다. 그들을 고립시킨 것은, 결국 인간이 그들을 두려워 한다는 증거다.
이런 예측불가능한 미지에 대한 공포가 '외계인 학대'라는 웃지못 할 영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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