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로 돌아보는 역사
+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
이바라기 노리코/뜨인돌/2010.10.5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 여류작가, 한글로 한국을 말하다.
일본작가의 한국어 공부를 담은 책이다. 전후 일본문단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이바라키 노리코(1926-2006)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는 시로 국내에서 이미 유명세(?)를 얻었다. 공선옥 소설의 표제로 쓰였고, 이 시의 형식을 패러디한 작품이 유형진 시인의 등단작이 되기도 했다. 다만 원작이나 원작자의 모습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는데, 거꾸로 그가 '한글'과 '한국문화' '한국인'을 이야기 한다.
작가의 한글 공부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50세에 남편을 잃은 이바라기 노리코는 한글을 공부하며 사별의 슬픔을 달랜다. 그 즈음 발표한 에세이집이 <한글로의 여행>(1986)이었는데 그 중 '윤동주'라는 수필이 일본 고교 검정 교과서에 실렸고, 1995년 이를 소재로 한 <윤동주 특집> 프로그램이 NHK TV를 통해 방송되면서 양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번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은 이 에세이집의 번역작이자 '아사히 신문'에 연재 되었던 칼럼을 모은 것이다. 신문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라 그런지 쉽고 편안하게 쓰여졌다. 무엇보다 명랑하고 발랄하다. 한글 공부의 동기와 난관, 과정들을 술회하는 첫번 째 장 부터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의 아이러니를 재치있게 보여준다. 왜 하필 한국어냐는 숱한 질문에 작가는 '이웃 나라 말이잖아'라고 눙쳐보지만, 여전히 일본인들을 아리송해 한다. 작가만큼은 '무난한' 대답임을 강조하지만.(일본 열도에 한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과는 사정이 다르다)
당시 50세가 넘었던 작가의 나이나, 문학계에서의 위상을 고려해 본다면 지식인의 뻣뻣함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히려 한글,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아이와 같이 빛이 난다. 쉬운 단어와 소박함이 있는 '이웃나라 민요의 멋'을 알았던 소녀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조선시대 방랑 화가들이 그린 민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만의 애정으로 혹은 이방인의 눈으로 비춰지는 한글과 한국은 새삼스러운 데가 있다. 되려 '우리가 이런가?'라고 되묻게 된다. '한국어의 울림만큼 낭랑하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언어가 없다' 이 같은 낯 간지러운 구절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신선한 이유 중 하나다.
''당신'일까 '선생님'일까'라는 꼭지에서는 우리나라의 호칭문화가 슬쩍 드러난다. 상대방을 칭하는 대명사 '당신'이 부부사이에서는 허락되지만 연상에게는 무례한 칭호다. 성씨 뒤에 붙는'~씨' 역시 풀네임 뒤에는 가능하지만 성 뒤에 붙여 부르면 실례가 된다. 그래서 '저 나라에서는 선생님이 마구 오간다'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니 책 서평을 부탁하는 출판사로부터 필자도 왕왕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한글 표현법과 일본어 사이의 연관점, 차이점을 찾아낸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두 나라간의 격차와 뼈아픈 역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각 민족마다 발성기관의 고유한 특징이 있음을 역이용 해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을 잡아들여 학살한 일, 일본인이 '조선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 한국의 미술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만들어낸 민족에 대해 냉담한 현실을 응시한다. 한글을 배워줘서 고마울 정도다. '한글'이라는 외형적 기능적 아름다움을 사랑하기보다 한글을 쓰는 민족을 이해하려는 마음씀이 뜨겁다.
그녀는 대표작에서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단순한 시구를 반복하며 패전 후 일본인들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담아냈다. 시대의 아픈 곳에 서 있고자 했다. 시를 사랑하는 만큼, 언어를 대하는 예민함을 작가는 '한글 공부'에서도 발휘한다. 학자나 전문가의 논리는 없지만 직관과 감성이 대신한다. 무엇보다 '이웃 나라'에 대한 애정이 깊으면서 단순하고, 단순하면서도 결이 곱다. 물고기가 물을 대하듯 한글을 쓰고 있는 우리에게 새삼 한글 속을 헤엄치게 하는 책이다. 굳이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기기보다, 이바라기 노리코처럼 '관계' 속에서 언어를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이밖에 '일상 속 한국어 염탐기'라는 두번 째 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속담, 기발한 일상어들, 세계 유래없는 '모국어의 날'을 만들어 기념하는 한국 이야기를 들려 준다. 또 네번 째 '여행길에 마주친 풍경'에서는 제목처럼 한국 여행길의 에피소드 들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장의 '역사에 깃든 한국문화의 표상들'에서는 묵직한 주제들을 다룬다. 숫자로 대신하는 우리나라의 두 기념일인 8.15와 6.25, 일제시대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이야기, '윤동주'라는 수필로 일본 문학 교과서에 소개되었던 '비운의 청년 시인, 윤동주'등이 실렸다. 작가는 마지막 꼭지에서 윤동주가 '일본 검찰의 손에 의해 살해당했'으므로 '일본인 스스로 그 죽음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윤동주의 아우 '일주'씨 와의 만남, 시인의 작품세계, 그에 대한 애틋함을 담았다. 덧붙여 윤동주의 시가 다치하라 미치조의 시와 닮았음을 꼬집기도 한다.
장승욱/하늘연못/2010.10.1
찰진 우리말 뒤엉킨 도사리 장터
글쓴이 장승욱은 알아주는 한글 전문가다. 한글문화연대가 선정한 '우리말글작가상' 수상작가로 지난 해 한글날 즈음에서 <우리말은 재미있다>를 펴내기도 했다. 이번 책은 우리말의 '도사리'를 모아 풀어 쓴 사전 형식이다. 책의 절반은 아예 사전처럼 꾸며 '말모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도사리'란 익는 도중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말하는데 이 책을 내면서 '도사리를 한 광주리 모아 팔겠다고 시장 귀퉁이에 나앉아 있는 촌부의 심정'이라고 했다. <우리말은 재미있다>가 집대성된 형태인 듯 하다. (오른쪽 사진은 <다 알지만 잘모르는 11가지 한글 이야기>에서)
'사전' 같은 딱딱함은 없다. 우리말 하나하나를 투박한 듯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말 맛이 일품이다. 꾸밈 없고 시원시원한 문장에 속도감이 있다. 생소하면서도 낯익은 우리말들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장터는 흔치 않다. '사전'의 탈을 쓰고 저자가 떠는 '익살'을 즐거이 감상하는 동안 찰진 우리말이 뒤엉킨다. 가령 '총각김치과 홀아비김치'라는 꼭지에서는 '처녀김치가 없으므로 영원히 총각신세를 면할 가망이 없는 총각김치도 있다'고 운을 떼며 '홀아비 김치'를 소개한다. 거기다 '총각이 어떻게 홀아비가 되었는지 시간이 넉넉한 사람이라면 한 번 연구해 볼 일이다'고 덧붙이며 ' 써레기김치, 섞박지, 덤불김치, 얼갈이김치, 지레김치, 둥둥이김치 등을 차례로 소개 한다. 마지막에는 수수께끼도 낸다. '김치 가운데 가장 맛이 없는 김치는?' 답은 '기무치'다. 이렇게 생활, 세상, 자연, 사람, 언어 속의 우리말들을 175꼭지에 걸쳐 소개한다.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문장편
김철호/유토피아/2010.10.15
한글을 제대로 쓰기 위한 실용서다. 이미 <국어실력~>시리즈로 '국밥'이라는 별칭을 얻은 책의 '문장편'이다. 20년 동안 글쟁이로, 번역자로, 텍스트 편집자로 살아 온 저자가 낱말편에 이어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저자는 책에서 좋은 문장의 세가지 조건으로 '의미의 명확성''표현의 경제성''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글맛'을 든다. 또 이 각각의 목표를 실현한 또렷한 문장, 찰진 문장, 맛있는 문장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은/는' '이/가'로 대표되는 조사의 사용법, 헷깔리는 조사와 연결어미들의 미세한 차이를 다양한 예문과 연습문제를 통해 설명한다. 내몸처럼 쓰고 있는 한글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 문장을 쓸 때 흔히 저지르기 위운 중복과 쓸데없는 표현들을 걸러내는 방법을 비롯해, 꾸밈말, 문장성분의 호응 등을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 특히 구어체와 문어체에 대한 탐구 편을 통해 '어떻게 쓸 지'에 대한 방향을 잡아 주고, '번역문'에 대한 오류와 실례를 들어 문장 공부의 필요성을 더한다.
배유안/책과함께어린이/2010.10.9
어른들도 '잘 모르는' 한글 이야기
글쓴이 배유안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소설로 쓴 <초정리 편지>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받은 바 있다. 게다가 작가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이 책을 쓰기에 좋은 조건이다. '한글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지식, 그리고 오늘의 한글이 있기까지 험난했던 역사'를 돌아본다. 게다가 한 일본인에게 5년 넘게 한글을 가르쳤다니 이보다 더 한글을 '잘 가르쳐 줄' 사람이 있을까?
책은 조카와 조카가 데리고 온 일본인 친구에게 한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썼다. 만화가 정우열씨가 그림을 그려 흥미를 돗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다지만 책의 표제처럼 어른들도 '잘 모르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한글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한글이 만들어지고 크게 반발했던 쪽이 실은 집현적 학자들이었다는 사실. 문자를 가지고 있는 100여 개의 언어 중창제자가 밝혀진 문자가 손에 꼽힐 정도이며, 그 중 일상에서 쓰이고 있는 문자로는 한글이 유일하다는 점. 사라진 옛글자에 대한 발음과 사용 설명 등, 두꺼운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사실(史實)들이 풍성하다. 모두 역사적 사료들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기반이 튼튼한 이유는 아마도 원저에 있을 것이다. 2008년 한글날 즈음 나온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책과 함께)이라는 인문서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책 자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색 4인 '한글' 책. 이바라기노리코,장승욱,김철호,배유안 (4) | 2010/11/13 |
|---|---|
| <3차원의 기적>과 <사흘만 볼 수 있다면> (8) | 2010/07/14 |
| 글밥 말고, 이야기밥 먹기 (4) | 2010/07/09 |
| 시든 독서의 구원수, 스릴러 or 미스터리 (2) | 2010/06/30 |
| 숲 속 셜록홈즈 안녕, 시튼 (2) | 2010/06/07 |
| 사장님, 민주주의 리콜 부탁해요. (10) | 2010/05/31 |





























